봄 뜰

2025.02.26 13:44:45

이효순

수필가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온다. 거실 앞 뜰에 눈길이 머문다. 초록을 안에 머금은 뭉툭한 봉오리가 화단에 덮인 지푸라기를 밀고 봉긋이 올라온다. 다정히 눈을 맞춘다. 복수초 꽃대다. 어느덧 때에 맞추어 자연은 땅속에서도 봄을 준비한다.

2년 전 단풍나무 그늘 아래 있던 복수초를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주었다. 지난해도 우리 집 앞뜰에서 샛노란 봄을 가장 일찍 전해준 주인공이다. 노란빛이 감도는 봉오리가 튼실히 올라온다. 사랑스럽다. 위대한 자연이다. 누가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때를 따라 자신을 연출하는 모습, 높은 차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도심 속에 있는 우리 집 작은 뜰. 그곳에서도 사계절은 때에 맞추어 새로운 모습을 순서대로 연출한다. 이곳으로 이사 올 때 작은 공간에 마음이 끌린 집이다. 아이들 초등학교도 가깝고 청주의료원, 예술의 전당, 야구장, 청주종합경기장이 이사하면서 보완됐다. 또한 시계탑이 가까워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먼저 살던 집에는 앞 터가 도로로 들어가게 되어 매우 삭막했다. 그 집에 비하면 집 주변의 작은 공간이 있는 것이 매력이었다. 그 빈 공간에 내 마음에 있는 뜰을 연출할 수 있는 여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가!

그때 아무것도 없었던 도심 속의 작은 뜰은 이제 자연을 눈앞에서 스스로 연출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곁에서 볼 수 있어 마음이 설렌다. 꽃을 좋아하는 내 겨울은 거실의 관엽식물과 이층 주방 공간에서 휴면 중인 석곡과 주로 지낸다. 그 시간들은 기다림을 키운다.

벌써 긴 겨울이 작은 몸짓으로 다가오는 봄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뜰앞에서 돋아난 봄꽃 하나로 마음이 이렇게 즐거울까. 복수초는 벌써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한 가족 같은 꽃이다. 식물이지만 나와 함께 살고 있으니 가족으로 생각하고 싶다. 이제 복수초와 더불어 봄의 전령사 노루귀도 머지않아 그 은은한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조금 있으면 튤립과 히아신스, 노란 수선화가 눈 맞춤을 하겠지.

나이가 들수록 어렸을 때 함께 했던 꽃들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지난해 개나리와 진달래를 집으로 들였다. 늘 생활 주변에서 접했던 꽃, 사춘기 때는 지나쳤던 꽃들이 차츰 좋아지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만큼 마음이 순수해지는 것인지. 진달래는 잎이 모두 지고 꽃봉오리만 찬바람을 견디며 꽃 필 그날을 기다린다. 가장 한국적인 꽃이 그리워지는 것은 그만큼 나 자신이 순수해진 것이리라.

이젠 꽃도 땅에 심어 기르는 것을 키워야 될 것 같다. 화분 관리가 나이가 드니 힘이 든다. 분갈이도 손에 힘이 없어지니 어찌할 수가 없지 않은가. 화분에 심은 꽃도 월동이 되는 것은 화단에 둔다. 그곳에서 화분 아래로 뿌리가 흙과 연결되어 싱싱하게 자란다.

복수초의 새싹은 느슨해진 마음을 끌어올린다. 비발디의 사계 중에서 <봄>을 들으며 복수초의 피어남을 축하하고 싶다. 생각만 해도 새 힘이 솟는다. 땅속에서 잠자던 것들이 모두 다시 살아나지 않던가. 머지않아 눈앞에 쏙 쏙 나타날 봄뜰의 꽃들을 그려보면 마음속에 작은 설렘이 인다. 노란빛이 조금 감도는 복수초, 땅속에서 고개 들어 봉오리를 올린다. 보름이 지나면 꽃이 피려는가.

우리나라엔 언제 따뜻한 봄이 올까. 내 기다림의 시간이 많이 포개지면 그 때나 오려는지.그 낡아져 가는 곳엔 오늘도 변함없이 밝은 햇살이 곱다. 내 기다림의 봄 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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