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와 연결된 탄금대교 앞이다. 신라의 악성(樂聖) 우륵을 기리는 이름으로 세워진 다리는 그야말로 예술이라 할 만큼 섬세함과 위용을 조화롭게 보여주고 있다. 그 아래로 흐르는 강은 고즈넉하기가 그만이다.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물결과 함께 섞인 윤슬마저 눈을 부시게 만드니 어찌 멈추지 않으랴. 우륵이 빚어내는 신비한 가야금 소리가 탄금호 전체로 퍼지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도록 한다.
서울 방향과 중앙탑을 가려면 늘 탄금대교를 지나다니는 편이다. 교량의 아치는 가야금 선율을 나타내듯 위아래로 흐르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점이 다른 교량과 다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교량 전체는 오색찬란한 빛으로 변하기까지 한다. 멀리서도 특별한 경관이 되고 있다. 이렇게 수려한 다리는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세워졌다. 충주댐이 생기기 전에는 강의 바닥이 보일 만큼 물이 깊지 않았기에 여름이면 물고기를 잡거나 다슬기를 잡으러 다니고는 했다.
강 건너가 고향인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리가 생기기 전, 계절에 따라 강물이 많아지면 나룻배로 충주의 학교를 오갔다고 한다. 이처럼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한 환경은 우리 삶을 빠르게 바꾸어 놓았다. 거대한 다리가 서고 자동차로 움직일 수 있는 길이 생겼으니 여러모로 풍요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다리는 사람의 기술로 만들어졌어도 그것은 충주가 지닌 역사와 인물을 돌아보는 계기마저 마련되었기에 뜻이 더 깊다. 가을이면 우륵 문화제라는 행사가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게 되니 예향의 고장으로 자랑할 만하다.
마을을 잇고 도시를 이어가는 길이 삶과 밀접하다는 생각으로 채워진다. 자연히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서다. 다리는 그만큼 소통의 역할마저 충분히 감당해 내고 있었다. 길이 사람의 이용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꼭 물리적인 면만을 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함이 포함되어 있으리라 여기고 싶다.
둘러보니 내가 사는 도시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다리가 건재해 있다. 그 다리 위로 사람들의 삶이 오래전부터 오늘에까지 발전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단지 오가는 편리함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길의 형태가 다르다 해도 의미는 항상 사람을 중심으로 이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길이란 보이지 않는다 해도 멈출 수 없고 다듬으며 가야 하는 생명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모든 길이 새롭다. 오솔길이든 고속도로이든 각기 제 몫과 조건들을 갖추고서 사람들의 갈 곳을 재촉하는 모양새이다. 그러기에 하루를 시작하느라 여기저기에서 모두가 바쁜 걸음을 내딛고들 있다. 어디에서든 스치고 마주하게 되는 사람의 향기가 그것을 증명해 낸다. 우리는 그렇게 길 위의 인생이며 누구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에 속해 있다.
눈부시게 발전한 길의 역사를 돌아본다. 더해서 하늘길도 바쁜 시대가 열렸다. 이처럼 살 같이 빠른 속성 가운데 살지라도 더 이상 길 위에서의 삶이 삭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간절하다. 함께 손잡고 가는 길이면 더없이 좋겠다. 과거의 길은 더 나은 현재의 길을 만드는 초석이 되고 현재는 미래를 향해 부끄럽지 않은 길로 이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