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참사와 국가

2025.01.16 15:07:00

한범덕

미래과학연구원 고문

지난해 막바지에 일어난 무안공항의 대참사는 온 국민의 충격이었습니다.

저도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한 해를 보냈습니다. 더구나 비상계엄 사태로 일어난 탄핵정국으로 국정공백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라서 평생 공직에 있었던 저는 한층 더 죄스런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국민들이 성숙된 자세로 이 위난을 지켜보면서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일부 전해지는 뉴스에서 무안공항에 걸린 추모와 격려의 글에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애썼던 기장과 승무원에 대한 글들이 많았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조건 사건이 일어나면 면밀한 조사이전에 사고 당사자로 지목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 일변도가 아니란 사실에 저는 우리나라에 대한 한가닥 희망을 가졌습니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분들은 어떤 국가는 잘 살고, 어떤 국가는 못사는 것인가를 연구한 업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분들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란 책을 보면, 어떤 국가는 잘 살고 어떤 국가는 못사는 이유가 그 나라가 가진 자원, 기후 등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의 정치·경제제도가 포용적이냐, 착취적이냐의 차이에서 온다고 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착취적 제도였습니다. 이는 권력자와 소수의 지배층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그 과실의 대부분을 착취하는 제도였습니다. 자연히 개인들이 자기들을 위한 생산이 되질 않는 사회는 못살게 되고 그런 나라는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포용적 제도를 가진 나라는 겨우 200여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수가 일한 과실을 일한 개인이 가져갈 수 있는 제도로, 그런 국가는 잘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포용적 제도의 국가에서는 소수보다는 다수의 의견으로 정책이 결정되고,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앞서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소수가 다수를 누르는 착취적 제도아래 어려움을 겪어온 오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분업적이고 협업적인 포용적 제도로 넘어와 우리라는 공동체로 인식되는 과정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도 진보냐 보수냐의 이분법적인 의견대립이 첨예한 실정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일방적, 폭력적, 불법적인 수단을 용인하지는 않습니다. 세계도 우리의 이러한 성숙된 모습을 놀라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최근 세월호, 이태원에 이어 무안공항에 이르는 대형참사에도 우리는 끈질기게 그에 대처해 왔습니다. 아직 진상규명과 책임소재에 관하여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이제 희생자들이 마냥 불운한 피해자에서 어쩌면 내 아들딸이요, 형제라는 가족의식, 너와 내가 다름이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로서 헤쳐나가야 한다는 성숙된 의식을 가져다준 점도 있습니다.

이번 무안참사도 조종사가 공항이 아니라 바다로 갔으면 어땠을까, 활주로에 왜 7.5m높이의 담장을 세웠느냐, 활주로를 왜 좀 더 길게 못했느냐, 새떼를 막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느냐 등 따지고 든 사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희생자를 비롯한 사태수습이 우선이고 진상규명은 시간을 두고 모든 전문가들이 모여 치밀하고 철저한 조사를 거친 뒤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른 수순일 것입니다.

다행히 전대미문의 계엄과 탄핵시국으로 국정공백이 우려되는 가운데서도 책임 있는 공직자들이 일사불란 가동되고, 정치권에서도 차분하게 지켜보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소수가 모든 것을 독점하여 이루어지는 수직적인 착취형 제도가 아닌 다수가 분업적이며 협업하는 포용적 제도를 가진 우리나라의 모습입니다.

이런 힘이 2025년 새해, 120년 전 을사년, 나라를 빼앗긴 아픈 경험을 완전히 딛고 성공한 국가 대한민국의 초석을 깔게 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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