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종합병원 중심의 의료체계 개선이 필요

2024.03.19 15:12:35

정초시

충북도 정책수석보좌관

제임스 와트(1736~1819)는 기계공으로 글래스고우 길드에서 7년을 수습공으로 있어야 한다는 규정으로 인해 고심하던 차에, 글래스고 대학에서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작업실을 주고 대학의 망원경 및 각종 기계의 수리를 맡겼다. 당시 글래스고 대학에는 경제학의 창시자였던 아담 스미스와 같은 혁신적 사상가들이 있었으며, 이들의 도움으로 증기기관을 탄생시켜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길드는 숙련공이 되기 위해 수습공에서 직공, 그리고 장인에 이르는 수습기간을 거쳐야 하는 도제제도(apprenticeship)를 특징으로 하는 매우 폐쇄적인 조직이었다.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고초와 장기간의 수습기간을 견뎌야 하는 제도였다. 만일 와트가 도제의 틀에 갇혔다면 창의적인 증기기관은 탄생하지 못했을 수 있다.

아마 현대판 도제제도의 대표적 케이스는 전공의 과정일 것이다. 의사가 되는 과정을 개관하면 의과대 6년을 거쳐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면 일반의, 혹은 전문의 과정을 밟는다. 전문의 과정은 인턴(수련의) 1년을 거친 후 레지던트(전공의) 4년 정도의 수련기간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펠로우로 대학 병원 혹은 일반병원에 전문의로 취업하거나 개원하는 구조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대략 11년 이상이 소요되는 길고도 험한 여정이다. 죽음의 계곡을 넘어 성공의 전문의에 이르는 전형적인 도제제도이다. 이러한 도제교육과정이 다양하고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의과학자 양성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일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전공의가 2월 20일부로 집단 사직하여 의료 대란이 발생하였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때도 의과대 증원을 검토하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진통을 겪었던 때에는 전문의들이 파업한 것과 대조적이다. 전공의가 없는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경증과 중증 환자의 중간 정도를 치료하는 2차병원의 의료수요가 크게 늘어나 의료전달체계가 상급병원중심의 기형적 구조에서 정상화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소위 빅 5로 불리는 병원의 전공의 비중은 40%대에 이르고 있는데, 전공의는 한 마디로 저임금에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진찰·검사·수술·처치·마취·당직 등의 필수 의료행위를 수행하기 때문에, 병원경영을 위해서는 전공의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공의는 현행법상 주당 평균 80시간과 연속근로 35시간 미만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77.7시간임을 감안할 때 100시간 이상의 근로를 하는 분야도 부지기수다.

전공의는 정의상 근로자와 교육생의 양면적 신분을 가진다. 전공의가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과정임을 임을 감안할 때 교육생으로서의 특성이 더욱 중요하지만, 병원 경영을 위해서는 근로자의 특성이 부각된다. 그 이유는 빅5를 포함한 상급종합병원의 경영구조가 전공의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기초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공의가 미래의 의료서비스를 책임지는 주체임을 감안할 때, 수련 기간 동안 충분한 교육특성이 부각되는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 의과대 증원은 필수의료인력의 부족과 현재와 같은 전공의 의존율을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수도권으로의 의료서비스 집중 등을 고려할 때, 지역의료인력의 양성을 통해 전 국민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전공의 수련과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정책의 방향을 꼽는다면, 정부가 전공의 처우를 전적으로 대형병원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교육생으로서의 특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전공의 교육비용 등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전공의가 빅5를 포함한 수도권 상급 종합병원에 집중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지역 간 협약을 통한 배분방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공의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 장치도 필요하다.

구조개혁은 불황기에 최적이라는 말이 있다. 불황에는 모든 문제가 드러나기 마련이며,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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