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도서관들의 작지 않은 꿈

2022.05.24 15:48:30

조우연

시인

장서 1000권, 33㎡의 공간, 열람석 6석 이상.

이것이 현행법상 작은도서관 설치 기준이다. 지금은 500세대 이상의 공동단지 건설 시 작은도서관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지만, 어디에 설치하는지 누가 운영하는지 그리고 운영비에 대한 규정은 없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자리 잡은 작은도서관도 있고, 상가 건물 귀퉁이에 있는 경우도 있고, 관공서 내에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운영비를 지원받아 운영되는 곳도 있고, 오롯이 자원봉사로만 운영되는 곳도 있다. 이런 작은도서관이 전국에 7천368개(2020년 기준)가 있으며, 충북에만 270개가 운영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많은 작은도서관 중 한 곳에서 운영하는 시 창작 교실을 다닌 적이 있다. 수업을 처음 들으러 갔을 때는 작은도서관이 청주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건물 내에 있었으나 여건이 허락지 않아 임대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로 옮겨야 했다.

그 많은 장서를 정리해서 옮기는 것 또한 오직 운영자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라 여간 힘든 것이 아니지만, 기간 내에 새로운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이 작은도서관이 지금 퇴거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작은도서관의 운영 현실은 천차만별이고 그만큼 열악하고 녹녹하지 않다. 운영자의 소신과 투철한 봉사 정신만으로 운영되기에는 너무도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이다.

전국의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에게 "작은도서관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작은도서관을 "사랑방", "단골 구멍가게", "사다리", "광장", "성장 놀이터", "숲", "마을 내 오아시스","카멜레온", "항아리"라는 다양한 대답을 내놨다.

그들의 작은도서관에 대한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작은도서관은 큰도서관보다 마을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그들을 모으고 함께 성장하며 숲을 이루는 사다리 역할인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작은도서관은 지친 현대인에게 쉼터를 제공하여 삶의 질을 높여줌으로써 행복지수를 높여 주고 있는 것이다.

퇴직하고 작은도서관 운영을 해보지 않겠냐는 지인의 말을 들은 적 있다. 지역의 작은도서관 운영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공약을 내거는 정치인이 나와서 당선이라도 된다면, 공약이 법으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그때는 여생을 걸어보겠다고 말하자니 지금껏 소신만으로 작은도서관을 운영하시는 많은 관장님들께 고개가 숙여진다. 참 부끄럽다.

작은도서관에서 시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던 시 창작 교실 풍경이 떠오른다. 1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책상에 시집을 펴고 앉은 책상 뒤로 에밀리 디킨슨, 한나 아렌트, 에이드리언 리치, 네루다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우편배달부가 책꽃이에 기대어 우리를 보고 있었다.

작은도서관이 있어서 우리는 아까시 꽃향기를 맡는 봄밤에, 폭우가 내리는 여름밤에, 보름달이 뜬 가을밤에, 첫눈 내리는 겨울밤에 시를 읽고 살아가는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제 이 작은도서관이 좋은 곳을 찾아 안착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본다. 시인이면서 이 작은도서관 관장님의 시를 한 편 적는다.

동백도서관

이종수

동백도서관은

동박새 민박집 옆

(대나무 숲에 있음

머릿돌 글씨는 지워져

생몰연대 가늠하지 못함)

대나무 마디만큼 아프고 단단한

붉고 푸른 소리책들만 있음

통으로 지워지지 않는 소리들이어서

새들이 애독자

회원 가입절차는 간단함

짧은 한 생쯤 아쉬워하지 않을

자존감만 있으면 됨

하여 동백도서관 붉은 책들은

몇백 년이 흘러도 반납하지 않아도

새책으로 들어차

통권 몇 호인지 아는 이가 없다

90쇄 100쇄 재판의 의미가 없음

부리 노란 새나 오목눈이새들이

저의 문장을 필사해가듯

백년 천년의 나를 읽을 뿐이라고

대출부에 적기만 하면

훨훨 행간 한 채 지을 수 있는

당신이 분관

동백도서관은

동박새민박집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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