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섬에 산다

2023.01.24 15:45:47

조우연

시인

상당산성에 올라 청주를 내려다볼 때마다 놀란다. 언제 저렇게 많은 아파트가 들어섰는지, 날씨가 우중충한 날에는 흡사 미래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회색빛 건물만이 빽빽이 들어서고 초록 식물이라고는 가로수 한 그루 안 보이는 그런 영화 말이다.

내가 사는 동네만 해도 이사 올 때는 논과 밭이던 곳이 지금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상태고 현재 건설 중인 곳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가옥의 형태인 아파트의 기원은 2천년 전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주상 복합 아파트처럼 1층에는 상점이 있었고, 그 위층을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5층에서 6층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엔 승강기가 없었기 때문에 높은 층에 살수록 더 가난했다고 한다.

이런 로마의 다세대 주택은 라틴어로 "인슐라(insula)"라고 불렀는데, "섬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섬들. 지금 우리 대다수가 사는 아파트의 기원은 "섬들"인 것이다.

어느 날 거실 발코니에서 서서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들을 바라보며 쓴 시가 있다.



이 거대한 묘목을

심는 시기와 심는 장소가 따로 없으나

강이나 산 주변같이 전망 좋은 곳에 심을수록

더 잘 자란다, 심고 나면

e-편한 세상, 푸르지오, 더 #, 캐슬, 휴먼시아 식으로 명명한다.

사람들은 나무 옆구리에 굴을 파고 기어들어가

물관과 체관을 점령하고

맹렬히 기생한다.

학명이 insula ardor*인 이 나무가

기원전 3~4세기부터 심어졌다고 하니

고대 로마 시절부터 사람들은

섬이라는 우울한 영역에서 살아온 셈이다.

어떤 이가 또

오래된 작은 섬을 버렸다, 그것으로 그는

격벽의 틀을 깨고

나무를 떠났다.

비를 받고

태양이 비춰도

나무는 뿌리를 내리지 않지만

더 우람한 나무를 갖고 싶은 사람들로

이 벌레 먹은 수목의 군락은 날로 늘고 있다.



insula arbor*: insula(고대 로마의 집단 주택 또는 섬)과 arbor(나무)를 조합해 아파트의 학명을 만들어 봄.

-「섬」전문



시의 제목은 "섬"이다. 섬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파트. 아파트들은 울울창창 수목처럼 자라고 있다. 수종이 조금씩 다를 뿐 해마다 군락은 확장하고 있다.

근래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가 하락추세다. 아무래도 고금리의 영향일 것이다. 전세가도 하락세다. 아파트 섬들의 가격은 하락이지만 치솟는 금리로 서민에게 집 장만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고대 로마의 아파트인 "섬들"은 지금의 임대아파트 개념이다. 당시 로마의 부유층들은 저택에 따로 살면서 인슐라를 소유하였다고 한다. 인슐라는 자산 증식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부실시공으로 아파트 입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는 현대처럼 당시에도 부실 공사나 불법 증축도 많았다고 한다. 부동산 투기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시대를 불문하고 불었나 보다.

최근 정부는 주식인 쌀 수매를 거부했다. 반면에 미분양 아파트를 건설업체가 책정한 분양가대로 매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수십 조에 달하는 세금을 쏟아 부어 아파트 건설업체를 부양하는 정책이 주식인 쌀농사를 짓는 농가를 지원하는 정책에 앞선다는 것에 이해가 안 간다.

부동산 투기와 개발 비리는 오늘내일 일이 아니었다. 대장동 사건만 보더라도 건설업체를 둘러싼 부유층들과 권력층들의 자산 증식이 얼마나 많은 부정과 부패를 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저출산으로 앞으로 인구는 급격히 감소할 것이다. 아파트라는 섬들이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둠에 표류하는 밤의 도시를 상상해 본다. 텅 빈 무인도가 되어버린 그 섬들이 그땐 다시 아름다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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