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무형문화재와 정신 - ⑨ 옹기장 박재환옹의 60년 외길 인생

"물레·가마 기계화 됐어도 옹기는 손 끝에서 완성"

2007.11.27 10:27:21

박 옹은 지난 9월 국정홍보처가 제작한 TV용 공익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우리 국민의 끈기와 노력을 쉽게 식지 않는 뚝배기로 빚어내 한국인은 물론,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 앞에 선보였다.

한국의 도자기 문화에서 고려청자, 조선백자, 분청사기 등이 그 아름다움을 뽐내며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면, 그 한켠에서는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등 한국인 특유의 발효음식과 함께 생활용기의 역할을 해온 옹기가 존재해 왔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역사만큼, 삶을 영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만들고 가꾸어 왔던 옹기의 문화는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소박한 신앙을 그대로 품어 간직하고 있다.

장독·쌀독·물독·젓갈독 등을 통해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가 하면, 동이·장군·시루 등에서는 일상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 있고, 굴뚝의 연통과 연가는 옛 가옥의 건축미를 느끼게 해주며, 성주단지·조상단지·터줏가리·조왕중발·칠성 등은 여인들의 소박하지만 절실했던 신앙을 짐작케 한다. 이렇듯 옹기는 단지 하나의 그릇으로서만이 아니라, 수많은 삶의 요소들을 담고 있는 문화적 매개체였던 것이다.


-이영자 ‘옹기’ 중

청원군이 지난 2005년 문의문화재단지안에 조성한 옹기 전수교육관 뒷편에는 박 옹이 그동안 만들었던 전통 옹기 수십점이 자리잡고 있다. 박 옹이 자신이 만든 옹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

수 천년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옹기의 역사가 흐른 것과 같이 60여년 한길을 걸으며 자신의 역사 속에 옹기를 품은 장인이 있다.

지난 2003년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 12호 옹기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박재환(75)옹.

박 옹은 선조부터 이어진 옹기 제작을 6대째 잇고 있으며, 현재 그의 옹기는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11세이던 1943년, 고사리같은 손에 처음 올려진 흙은 60여년의 세월동안 단 한번도 그의 손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박 옹은 “먹고 살기 위해 어린 나이에 옹기를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나 하루 16시간씩 이어지는 고된 노동으로 이 일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며 “아무도 없는 밤에 몰래 물레를 돌리며 옹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어설프지만 내 스스로 완성한 옹기를 보면서 마음을 돌리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옹은 지난 9월 국정홍보처가 제작한 TV용 공익광고에 등장해 IMF 외환위기를 이겨낸 우리 국민의 정신을 쉽게 식지 않는 뚝배기로 빚어내 한국을 비롯한 세계인 앞에 선보이기도 했다.

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김치냉장고에 사용할 수 있는 전통 옹기를 제작해 국내 모 전자제품회사와 제품을 생산중에 있다.

청원군 문의문화재단지내 전수교육관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박 옹이 전통 옹기 제작 시연과 함께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홍수영
박 옹은 항아리의 표면 빛이 오디처럼 새까맣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것이 좋은 항아리라고 말한다.
겉에 유약을 발라 단순히 광을 낸 것뿐아니라, 목초를 태운 재와 약토, 가장 중요한 광명단(납이 섞인 페인트원료)을 넣어 구워야한다는 것이다.

광명단 항아리는 납성분 첨가돼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소비자에게 외면받아 온 항아리라고 알려져있지만, 박 옹은 “전통옹기는 1천250도의 고온에서 구워지기 때문에 납 성분은 모두 날아가 버리고 없어 상관이 없지만, 문제가 됐던 옹기들은 일부 대량생산업체들이 800~900도 낮은 온도에서 구워 만든 것들”이라고 일축했다.

박 옹은 “일반인들이 흔히 ‘항아리가 숨을 쉰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어찌보면 틀린 말이다. 항아리는 음식을 서서히 숙성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항아리가 숨을 쉰다는 것은 외부공기가 항아리 안으로 유입됐다는 말과 같다”며 “그렇게 되면 음식은 쉽게 변질되고, 그 항아리는 잘못 만들어진 것이 된다”고 말했다.

한참 전성기를 누리던 20여년전 박 옹은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면서도 10분에 표준 옹기 한 개를 만들어 내고, 1천250도 고온의 가마에서 하루에 2천여개씩 옹기를 구워내는 작업에도 끄떡없었지만, 지금은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기계화된 물레와 가마가 있지만, 박 옹은 발로 돌려가면서 옹기를 빚는 전통 물레를 고집한다. 발로물레를 돌려가며 박 옹이 옹기를 만들고 있다.

그는 “지금은 물레나 가마 등이 대부분 기계화되서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됐지만, 흙을 재료로 하는 만큼 사람의 손을 필수적으로 거쳐가야 완전한 옹기로 탄생하게 된다”며 “공식적인 나의 기술 전수자는 큰 아들과 막내아들이다. 힘들고 고된일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들들이 나서서 일을 배우겠다고 하니 가슴 한켠으로는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현재 박 옹은 지난 2005년 청원군이 문의문화재단지내에 사업비 5억원을 투자해 전통옹기가마터 1개소와 옹기 및 황토물들이기 체험장 132㎡, 옹기 전수관 등 도자기체험관 178㎡ 규모를 마련해 옹기 전수교육관을 건립한 곳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박 옹은 “현재 청원군 강외면의 작업장에서 옹기를 만들고 있는데 그곳의 작업량을 20%정도로 축소하고 나머지를 전수관에서 작업해 나갈 계획이다”며 “지금까지 생업을 위해 옹기를 만들어 왔다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에는 전통을 잇기 위해 작업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의무감같은 것이 생겼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이 전수관에서 관광객을 비롯해 체험활동을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옹기제작과 시연, 전시, 체험교실, 전수활동 등을 펼쳐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옹기 알리기에 힘쓸 계획이다.


/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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