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역풍속 열린우리 ‘지각 변동‘

‘행정의 달인‘서 ‘초야의 선비‘로...

2007.10.18 00:02:50

2004년 4월에 치러진 17대 총선은 충북 선거사상 특정정당이 전 선거구를 석권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이 그 어느 지역보다 충북에서 거셌다. 또 3선 고지 달성을 그 어느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이원종 충북지사의 전격적인 선거 불출마와 정계은퇴 선언은 지역정가를 뒤흔든 것은 물론 ‘아름다운 용퇴’로 전국에 회자됐다.
/ 편집자주


17대 총선 열린우리당 싹쓸이
2004년 4월 13일 실시된 17대 국회의원 선거(총선)는 우리나라 선거사에 ‘감성선거’라는 새로운 양상을 낳았다.
17대 총선은 국회 전체 의석 299석 중 열린우리당이 152석의 과반 의석을 확보해 정국 주도권을 장악했다. 한나라당 121석, 민주노동당 10석, 민주당 9석, 자민련 4석 등이다.
17대 총선은 탄핵심판론과 거여견제론이 맞붙었다.
그러나 17대 총선의 최대 변수는 의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는 총선 두 달 전인 2004년 3월 12일 야당 국회의원 193명의 찬성으로 가결돼 그해 5월 14일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탄핵은 앞서 1월 5일 새천년민주당의 조순형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면서 본격화됐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동시에 야당에 대한 국민의 질타가 쏟아졌고, 전국 각지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잇따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은 현직 대통령 탄핵을 가결한 죄(?)로 17대 총선에서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총선 결과, 충청권 24개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은 19석을 석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반면에 자민련은 4석, 한나라당은 1석에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
충북과 대전이 각각 8개와 6개 전 선거구를 휩쓸었고, 충남(10석)이 열린우리당 5석, 자민련 4석, 한나라당 1석이었다.
특정정당(열린우리당)이 충북 8개 전 선거구를 싹쓸이한 것은 충북 선거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탄핵 역풍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그러나 전 선거구 석권은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더구나 탄핵 역풍이 아무리 거세다 해도 3선 등극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던 자민련 증평·진천·괴산·음성의 정우택 의원이 정치 초년생인 김종률 후보에게 고배를 마신 것은 충북에서의 최대 이변이었다.
정우택·김종률 두 후보는 각자 고향에서 53.6%(진천)와 54.6%(음성)를 득표했다.
승패를 가른 곳은 괴산이었다.
괴산 유권자들은 정치신인인 김 후보에게 50.6%를 몰아줬다. 반면에 정 의원은 33.5%에 그쳤다. 이는 이곳 맹주를 자임해 온 김종호 의원이 정 의원에게 공천권을 내준 것과 함께 국회에서의 증평군 설치 법안 통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데 대한 반감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정 의원은 총선 패배를 딛고 지난해 5·31지방선거에서 충북지사에 당선, 국회의원에서 광역자치단체장으로 변신했다.
이처럼 일부 지역이 이변을 연출하면서 언론사의 여론조사 신뢰성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충청권 압승은 신행정수도 건설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일반론과는 달리 야당(한나라당)의 협조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낳았다.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이 현재 정기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한나라당이 법안 통과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는 분석은 이 같은 해석을 충분히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원종 지사 ‘아름다운 용퇴‘
“충북도민은 위대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 이제 (가족과 함께)쉬고 싶다.”
2006년 1월 4일, 새해 벽두에 지역정가와 충북은 물론 전국을 강타한 사건(?)이 벌어졌다.
‘행정의 달인’ 이원종 충북지사는 이날 5·31지방선거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고 정계은퇴 결단을 내렸다.
당초 1월 중순에 (5·31지방선거 출마여부)입장을 밝히기로 했던 이 지사는 시기를 앞당겨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 불출마와 함께 정계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이날 오전 11시 충북도청 지방기자실엔 취재진과 간부공무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 지사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직접 작성한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민께 드리는 말씀’이란 글을 통해 거취문제를 언급했다. “오는 2006년 6월 30일 민선 3기 임기를 마치는 대로 제 생애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정계를 은퇴하고자 합니다. 적절한 시기의 명예로운 퇴장은 평소 저의 소망이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인 것 같습니다.”
이 지사는 이어 “지난해(2005년) 6월 30일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이 확정됐다는 발표를 듣는 순간 충북의 숙제가 해결돼 물러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 때 발표하지 않은 것은 혁신도시 선정 작업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지난 8년 가까운 세월동안 도민 여러분의 성원과 신뢰에 힘입어 충북도정을 이끌어 올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스스로 감사하며 물러갈 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라며 정계은퇴의 소회를 밝혔다. 1963년 3월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이 지사는 “(가족과 함께)편히 쉬고 싶다”는 말로 지난 40여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접었다.
이 지사의 선거 불출마와 정계은퇴 선언은 너무나도 뜻밖이었다.
연말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출마여부와 관련해 “부수적으로 개인적인 인생도 검토해 보겠다”고 말해 불출마 가능성을 은연 중 시사했다.
하지만 그 당시엔 이 말의 속뜻을 눈여겨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고속철도 오송역,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충북 미래발전의 핵심사업을 결정짓고 ‘바이오토피아 충북’ 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 지사의 지지도는 정당을 불문하고 ‘절대 강자’였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불출마 선언 직전 신문사와 방송사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어느 후보와 상대를 해도 50% 안팎의 절대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해도 이 지사의 3선 고지 달성에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이런 이 지사의 불출마 선언은 차기 충북지사 선거 구도에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이 지사는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한나라당 당적도 정리하겠다는 뜻을 밝혀 정치권과 단절 의지를 확고히 했다.
최근엔 17대 대선과 관련해 한나라당 충북선거대책위원장 또는 선대위 상임고문 하마평이 무성했으나 설(說)에 그쳤다. 이 전 지사는 정계은퇴 후 그동안 꾸준히 충북을 찾아 각종 특강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리에서 물러날 줄을 안 이 전 지사의 ‘아름다운 용퇴’가 여전히 빛을 잃지 않는 이유다. /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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