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학술연구‘ 내세워 고려史까지 탐내나

‘동북사지‘ 발행인은 지린성 당위 선전부 부부장

2007.06.05 14:25:22

중국이 ‘순수한 학술 연구‘임을 무기로 내세워 고구려와 발해에 이어 아예 고려까지를 "중국 고대의 한반도에 수립됐던 지방정권"이라고 우기고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 지린(吉林)성사회과학원 주관 하에 발행되는 격월간 역사잡지 ‘동북사지(東北史地)‘ 2007년 3호(5-6월호)에 실린 ‘당(唐)나라 명종(明宗)이 고려 태조 왕건의 족적(族籍)을 밝혔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가공인물인 것으로 보이는 지린성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스창러(史長樂)‘ 연구원이란 이름으로 된 이 논문은 고려사 ‘태조세가(太祖世家)‘의 일부 내용을 풀이하는 형식으로 ‘고려는 중국 출신 통치자가 한반도에 세운 세번째 정권‘이라는 식의 다분히 도발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 고구려는 중국인이 세운 나라? = 논문은 서두에서 "왕건은 절대 한반도 토착 신라인의 자손이 아니라 중국 화이허(淮河)유역에서 온 한인(漢人)의 후예"라고 단정했다. 화이허는 황(黃)하와 양쯔(揚子)의 중간지점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그 근거로는 태조 16년(서기 933년)에 당 명종이 보낸 책봉조서와 송(宋)나라 태종(太宗)이 고려 성종(成宗) 4년(서기 985년)에 보낸 책봉조서를 끌어댔다.

당 명종의 조서에 나오는 ‘경장회무족, 창해웅번(卿長淮茂族, 漲海雄藩)‘이라는 구절과, 송 태종의 조서에 나오는 ‘상안백제지민, 영무장유지족(常安百濟之族, 永茂長淮之族)‘이라는 구절에 나오는 ‘장회‘가 회하유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논문은 또 당 명종의 조서 가운데 ‘종주몽계토지정, 위피군장. 이기자작번지적, 선내혜화(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藩之跡, 宣乃惠和)‘라는 구절을 풀이하면서 "고려는 중국 출신 통치자가 세운 나라"라는 논란의 씨앗을 뿌렸다.

"왕건이 왕을 칭하면서 건국한 것을 주몽의 (고구려) 개국(開國)과 기자의 입국(立國)에 직접 비유한 것은 한반도 역사에서 이들 두 사람에 이어 또 한 사람의, 중국에서 온 통치자가 새로운 고려정권을 세워 고려의 군장(君長)이 되어 행복과 왕을 가져다 주었다는 의미"라는 주장이다.

논문은 이 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의 논리 전개를 하지 않은 채 ‘왕건의 출신을 둘러싼 수수께끼‘의 해명에 초점을 맞췄으나 이는 바로 ‘왕건 한인 후예론‘을 토대로 향후 ‘중국인 고려정권 수립‘이라는 억설을 계속 확산시켜 나가기 위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동북사지‘ 사람들과 ‘동북공정‘ 사람들 = 문제의 논문이 한 개인의 학술적 연구에서 나온 주장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지린성사회과학원이나 동북사지의 성격을 보면 그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지난 2002년 2월부터 5년간 한국과의 마찰에도 아랑곳없이 동북공정을 꾸준하게 추진해온 변강사지연구중심을 산하에 두고 있는 중국사회과학원이 중국 정부의 종합 싱크탱크인 것처럼 지린성사회과학원은 지린성 인민정부의 싱크탱크다.

지린성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는 지린성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동북공정의 선행연구와 동북공정 과제연구, 동북공정이라는 간판이 내려진 이후의 후속 및 응용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거나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북사지도 바로 지린성사회과학원 주관 아래 동북사지잡지사에 의해 발행되고 있으며, 이 잡시사의 사장은 다름 아닌 지린성 당위원회 선전부 부부장이자 지린성 사회과학계연합회 부주석 겸 당조서기, 창바이(長白山)산문화연구 회장 등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변강사지연구중심 전 주임 마다정(馬大正)과 현 주임 리성(려<力없는勵)聲)은 편집위원회 고문, 쟁쟁한 동북공정 과제연구자들인 류쯔민(劉子敏), 류허우성(劉厚生), 쑨위량(孫玉良), 장비보(張碧波), 겅톄화(耿鐵華), 쉬더위안(徐德源), 웨이춘청(魏存成), 양소전(楊昭全) 등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몇가지 점으로 보아 동북공정이 한창 진행될 시기인 지난 2004년 창간돼 그동안 수많은 고구려사 및 발해사 관련 논문 등을 게재해 온 동북사지는 지린성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내지는 동북변강사지 연구계의 선전용 잡지로 간주되고 있다.

중국은 한시적으로 추진해온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의 역사 프로젝트는 일단 접지만 동북공정의 성과를 토대로 한 후속 및 응용 연구를 더욱 심화 발전시킨다는 방침에 따라 동북지방의 각종 연구기관으로 하여금 관련 연구를 계속하도록 하고 있다.

◇ 저자 ‘스창러‘는 가공의 인물? = 이 인물은 동북사지 2006년 6호(11-12월호)에 ‘왕건은 왜 국호를 고려라고 정했나‘라는 논문으로 ‘데뷔‘한 후 6개월만에 다시 고려의 뿌리를 뒤흔드는 대목이 포함된 논문을 내놓았다.

중국의 유명한 인터넷 검색사이트를 이용해도 이런 논문을 쓸 만한 역사학자로서의 ‘스창러‘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이 논문의 필자를 알만한 기관의 한 관계자는 "‘스창러‘가 가명이냐"는 연합뉴스의 질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만 답변했다.

동북공정의 연구과제를 수행한 학자들의 이름을 아무리 대조해 봐도 ‘스창러‘는 없는 점으로 보아 동북사지는 논문의 민감성을 감안해 진짜 저자의 이름을 감추었거나 복수 인원의 공동연구 결과를 이런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기사제공:연합뉴스(http://www.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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