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구조대원의 바람

2009.08.23 19:19:48

얼마 전 청주서부소방서 119구조대를 찾았다. 화재, 수난사고 등 긴급구조현장에 출동하는 그들의 애환을 듣기 위해서였다.

구조장비로 가득찬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119구조대장을 비롯한 대원들에게서 쉴 새 없는 말이 터져 나왔다.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탓에 1년 365일 녹초가 되지만 요즘 같은 여름은 그들에게 고약하기만 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 속에서 발생하는 화재, 그늘 한 뼘 찾기 힘든 뙤약볕 아래서의 인명 구조. 생각만 해도 온몸이 땀범벅이 되지만 그들은 더위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흔히 알고 있는 화재현장, 인명구조만이 119구조대원들의 업무가 아니다.

물놀이 사고, 벌집퇴치, 뱀 포획, 동물구조 등등.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올해는 유난히 벌집제거 요구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수년째 이상고온 현상이 계속되면서 말벌이 급속도로 번식해 주택이나 상가에까지 집을 짓고 있다.

주택의 처마 밑이나 인접한 창고 등에 집을 지은 말벌들을 퇴치하기 위해선 해충복을 착용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에 해충복까지 입으면 숨쉬기조차 힘들다.

몸이 10개라도 부족하다보니 그들에게 여름휴가는 그저 희망사항이다.

휴가를 간다면 대원 1명이 구조 활동에서 차지하는 공백을 다른 대원들이 메워야 한다는 점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희망사항' 한 가지를 털어놓는다.

인원충원도, 근무여건 개선도 아니다. 바로 위치추적 서비스 악용이 근절됐음 하는 것이다.

자살기도자 등의 휴대전화 위치추적 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단순가출이나 귀가시간 지연 등에 대한 추적요청이 증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직계가족임이 확인되면 위치추적 서비스를 요청할 수 있다 보니 단순 가출자 등에 대해서도 위치추적을 요청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실제 구조된 사례가 전체의 10%에도 못 미친다. 대부분 부부싸움 후 가출한 배우자나 귀가가 늦은 자녀를 찾기 위한 것이다.

가출 등 단순한 연락두절에도 가족들이 위치추적을 요청하거나 막무가내로 119 상황실을 찾아 떼를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보니 '울며 겨자먹기'격으로 추적에 나선다고 한다.

위치추적에 나선다 해도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을 경우 확인이 불가능하고, 범위 또한 반경 1∼5㎞로 설정되면서 수색작업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렇다보니 화재나 구조 등 긴급상황 발생시 신속한 처리는 물론 출동지체, 인력부족으로 이어지는 등 행정공백의 우려를 낳고 있다.
한 건의 위치추적 악용이 자칫 화재발생과 맞물리면 수십여명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이기주의에서 파생되는 소방시스템에 대한 악용이 결국 구조대의 헛걸음으로 이어지면서 그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나와 내 가족'의 몫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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