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을 위한 '엠바고'가 아니다

2009.07.08 19:04:17

올 초 청주지역에서 발생한 연쇄 날치기 사건은 부녀자들에게 그야말로 공포였다.

범인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활개 쳤다. 청주시내 곳곳을 누비며 무차별적으로 범행을 했다. 석 달 동안 20건 넘게 발생했지만 경찰은 '눈 뜬 장님'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4월 21일 범인이 붙잡혔다. 땀 흘리며 일궈낸 경찰의 탐문수사도, 범행흔적 등을 분석한 과학수사도 아니었다. 한 시민의 결정적 제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른 때라면 경찰이 검거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을 텐데 이날 경찰 내부에선 '쉬쉬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몇 시간 뒤 청주흥덕경찰서 수사간부가 전 언론사에 1일간 '엠바고(Embago)'를 요청했다.

정확한 피해금액을 산출하고 범행과정 등을 조사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다.

엠바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동과 여성을 상대로 한 납치사건도, 검거해야 할 공범들이 무더기로 있는 대형사건이 아니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날 엠바고는 이튿날 예정된 기자회견을 위한 시간벌기용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연일 터지는 사건으로 경찰이 맥을 못 춘다는 비판을 받아오던 상황에서 사건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체면치레 한 번 해보려했던 것이었을까. 기자회견에 목숨 걸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에도 청주흥덕서는 또 한 번 촌극을 빚었다.

결별을 요구한 애인을 납치해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40대 남성을 사건 발생 보름 만인 지난 4일 충남 공주에서 붙잡혔다.

실종 8일 만에 피랍된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되자 경찰은 용의자 검거를 위해 엠바고를 요청했다. 납치살인사건의 용의자라는 점에서 언론은 엠바고를 수용했다.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각 신문·방송·통신에서 일제히 기사가 보도됐다.

6일 경찰은 뜬금없는 브리핑을 했다. 용의자는 버스를 타고 다녔고,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며 도피생활을 했다는 게 이날 기자회견의 핵심내용이다.

검거 3일 후에 이뤄진, 게다가 경찰이 자청한 기자회견이었지만 가치있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알맹이 없는 기자회견은 중견급 수사간부에서부터 말단 형사까지 경찰내부에서 조소거리가 됐다.

'묻지마 살인'처럼 용의자가 불특정이고 단서조차 없는 사건을 해결했다면 기자회견을 통해 검거경위 등을 알릴 필요가 있지만 수사 초기부터 용의자 인적사항이 드러난 이번 사건은 기자회견을 하기엔 낯간지럽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생색내기용 브리핑'이라고도 꼬집었다.

지난 1월 발생한 신탄진 부녀자 피살사건은 용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한 채 6개월이 지나고 있는데 인적사항 확보된 용의자를 보름 만에 붙잡고 자화자찬한 점은 경찰이 변명의 여지없이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생색내기용 브리핑을 통한 홍보에 열중하기보다 허술한 초동수사와 미제 사건에 대한 수사력 부재의 개선점을 먼저 찾는 게 순리가 아닌지 묻고 싶다.

국민들은 실적 갖고 생색내기에 열 올리는 우둔한 경찰보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묵묵한 경찰을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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