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택할 권리

2025.04.08 15:20:15

김진영

청주시 균형건설과 주무관

며칠 전, 어머니께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싶다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순간 놀랐지만, 곧 어머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외할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 오랫동안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 계시다 돌아가신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19세 이상의 성인이 임종기에 접어들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미리 문서로 남기는 것이다. 회복 가능성이 없을 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체외생명유지술 같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문서다.

이런 서류를 작성하고 평소에도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고 말해왔더라도 막상 가족의 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닥치면 의료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서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기하지만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고통 속에 인위적인 연명치료를 받으며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일 수 있다. 또한 연명치료가 길어질 때 가족들이 겪게 될 경제적, 심리적, 육체적 부담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무엇보다도 법적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존재한다면 가족들의 반대가 있더라도 작성자의 뜻이 우선된다고 한다.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당사자의 뜻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생명을 연장하는 인위적인 치료를 중단하거나 시작하지 않는 방식으로 환자가 자연스럽게 임종을 맞이하게 하는 것을 소극적 안락사라 한다면, 의료진이 직접 환자의 사망을 초래하는 경우를 적극적 안락사라고 할 수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나 신경계 질환 환자처럼 치료법이 없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환자에게는 안락사가 인도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안락사의 합법화는 신중해야 한다.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약화할 가능성이 있고, 경제적 이유로 환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안락사가 남용될 우려도 있다. 또한 환자가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지 못한 채 중증 질환에 빠진 경우,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의 선택을 온전히 존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어떤 형태의 안락사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기에 종교나 윤리적인 관점에서는 '자살'이나 '살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 많은 종교에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원죄'를 씻기 위한 것이라 여기고, 생에서 고통을 다 겪고 나서야 죽어서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죄값을 다 치르지 않고 도망친 것과 같아 더 큰 죄로 간주하며, 지옥에 떨어지거나 구천을 떠돌며 괴로워하게 될 것이라 경고하기도 한다. 생도 고통이었는데 죽음 이후마저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만약 하늘에 측은지심을 지닌 신이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구원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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