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행복의 거래처

2020.03.19 16:32:50

김혜식

수필가

신종 코로나 19에 의한 사회적 거리가 강조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집안에만 갇혀 있노라니 이 역병이 창궐하기 전 소소한 일상이 마냥 그립다. 심지어는 이 사회적 거리로 말미암아 며칠 전 친정어머니 생신도 외면해야 하는 불효를 저질렀다. 이 날만큼은 모처럼 오랜만에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머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일이 행복한 기억으로 떠올려지는 이즈막이다.

이렇듯 신종 코로나19에 의한 불안과 공포는 삶속에서 크나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문밖출입이 두려워 칩거를 하노라니 마치 외딴 섬에 홀로 갇힌 기분이다. 이게 아니어도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현대의 삶은 매사가 정신적인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스트레스의 연속은 나서부터 무슨 일이든 이면을 헤아리고 매사 깊이 생각하는 것을 꺼리게 했다. 이 탓에 즉물적卽物的인 사고에 익숙해진 듯하다. 적당한 긴장과 스트레스는 외려 삶의 느슨함을 탄력적으로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신종코로나19가 안겨주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게 요즘 심경이다. 무엇보다 이즈막은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질병보다 두렵다. 마음 편한 게 최고라는 생각이 전부이니 나도 이제 나이를 먹는가보다.

올해부터는 일주일에 한 권 이상 책을 읽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또 있다. 마음이 까닭 없이 뒤척일 때는 무턱대고 백화점을 찾기로 하였다. 평소 과소비와는 거리가 먼 검박儉薄한 삶이다. 하지만 마음으로 하는 쇼핑만큼은 이제는 아끼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래 코로나 19가 삶을 덮치기 전엔 가끔 백화점엘 들려서 삶 속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다. 그곳에 들어서면 허허롭던 마음이 포만감으로 충만 하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많은 사람들로 복작 거리는 백화점 매장 사이를 유유히 휘젓고 다니노라면, 그 매장에 진열된 물건들이 마치 전부 내 것인 양 싶기도 했다. 백화점엔 당연히 있어야할 시계와 창문이 없다. 그러므로 이곳서 낭비하는 시간의 아까움을 나는 그곳에서만큼은 제대로 인식 못했다. 하여 여유로운 마음으로 백화점에 비치된 거울에 내 모습도 비추어보고, 그 곁의 매장 안 물건도 기웃 거리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했다. 특히 백화점 일 층에 자리한 화장품 매장 앞엔 질서정연하게 진열된 온갖 화장품들이 뿜어내는 향긋한 향기가 발길을 사로잡는다. 그곳 화장품 매장에 진열된 각 화장품 회사들의 견본품을 얼굴에 발라보는 시간 역시 즐거웠다. 립스틱도 이 색 저 색 입술에 칠해보고, 기초 화장품도 바르며 향과 발림 성을 각 메이커별로 비교 분석해 보기도 하였다. 이 때 이곳 매장에 진열된 많은 화장품들로 겨우내 회색빛이었던 마음을 잠시나마 아름답게 채색하는 듯한 기분에 갑자기 온몸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마치 잃어버린 지난 청춘을 이곳에서 되찾는 착각마저 드는 것은 어인일일까. 화장품 매장을 벗어나면 이, 삼 층엔 여성 의류 매장이 있다. 에스켈레이터를 타고 이층엘 오르면 화려한 색채와 세련된 디자인의 여성 옷들이 나를 유혹했다. 이것에 혹해 옷 매장 안을 둘러보곤 하였다. 겨울옷이 반쯤 치워진 자리엔 일찍이 봄옷이 등장한 매장들도 다수였다. 신상품인 봄옷을 골라 걸친 내 모습을 거울 속에서 확인할 때는 나도 모르게 무아지경에 함몰陷沒 되곤 하였다. 본디 유행은 몇 년을 주기로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지는 특징이 있잖은가. '올 봄 유행은 어떤 색깔과 디자인일까?' 를 이곳 옷 매장에서 탐색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렇듯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백화점 윈도우 쇼핑 삼매경에 빠지노라니 마치 백화점이 행복의 거래처 같았다. 이젠 지난 일상에서 누렸던 이 행복을 코로나 19가 송두리째 앗아갔다. 돌이켜보니 무탈했던 지난날이 진정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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