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그룹 ‘Flexible’의 탄생

끝없는 변화 추구…관객에게 먼저 손 내밀다

2008.10.05 20:17:27

청주의 미술애호가들은 뭔가 새로운 것이 등장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새로움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혼자 하는 개인전이나, 협회차원에서 몇 십 명씩 하는 형식적인 전시나, 사설미술관의 기획전이 아니었다. 작가 스스로 기획하고 작가 스스로 새로움을 갈구하며 작가 스스로의 열정을 드러내고 작가 스스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작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그런 소규모 그룹전의 탄생을 갈망했었던 것이다.

갈증을 해소해줄 단비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6명(박계훈, 신현경, 이미숙, 임은수, 채명숙, 황신실)으로 구성된 미술그룹 ‘Flexible’(회장 채명숙)이 탄생했고 그들이 손수 기획한 전시 ‘I am paper'전이 오는 8일부터 17일까지 청주시 사창동 무심갤러리서 열린단다.

처음 그룹 결성의 필요성을 제시했고 그룹에 맞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작가를 구성하고 그 공통점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한 박계훈(43)과 이들의 실무적인 일을 뒷바라지 하게 될 임은수(43)를 만나보았다.

과연 이들이 꿈꾸는 것이나 이들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들이 전시장에 펼쳐놓은 작품이나 전시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미리 보아야 할 것 같았다.

청주에 미술 소그룹 ‘Flexible’을 만들고 전시를 기획하는데 앞장선 박계훈(사진 왼쪽)과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고 있는 임은수를 만났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청주 미술판에 신명나는 일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그룹의 명칭은 왜 ‘Flexible’인가. 사전적으로 번역하면 유연한, 탄력이 있는, 변화 가능한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 역시 사전적 의미와 맞닿아 있다. 작업의 세계는 끊임없이 변해야하며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 변화에 능동적이어야 하며 유연성과 탄력을 반영하면서 개방적인 태도를 존중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는 회원간의 원칙에서 출발한 셈이다.

또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작업의 형식에 있다. 현재를 시점으로 종이를 활용한 작업을 선호하고 있거나 미술의 최소 단위인 점, 선, 면에서 출발한 탐구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기 창작의 근간이 되는 대상을 연구하고 그에 맞는 형식을 통해 대상을 다르게 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의 공통점을 지향하면서 각기 다른 내용으로, 다양한 작품으로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룹 결성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 소규모의 미술그룹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갈 예정이라는 박계훈, 임은수는 이렇게 말한다.

타 지역의 경우,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 중에 중앙의 문화권력을 앞서는 스타 작가들의 탄생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청주에 그런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스타작가로 발돋움할 가능성은 잠재돼 있는데, 그것을 드러내 앞세워 줄 수 있는 지역의 정서가 메말라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작가들은 점점 침체되고 창의성이나 열정이나 치열함이 떨어져 간다. 미술을 하는 재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대로 주춤거릴 시간이 없다. 하나씩 생각했던 것들을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청주에 흐르는 이러한 기운을 바꿔주어야 우리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미술의 분위기가 침체되었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고 우리가 감당해야할 일이며, 그 대안을 우리 스스로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함께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작업하는 작가들을 들춰내 앞세워 주고 인정해주고 격려해 줘야겠다. 스스로 결집해 청주라는 공간에서 무엇이 새롭게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환기시켜야겠다. 그것은 지역에 대한 책임감이기도 하고 작가로서의 양심이기도 하다.

전시장에 작품을 펼쳐놓으면 서로의 작품에 대해 “그래, 당신 작품 괜찮았어. 당신은 작가야”라고 말해주며 그런 말 듣고 싶어 하는 작가들에게 그 내밀한 속내를 건드려 주는 분위기가 절실한 것이다.

유행에 치우치지 않기를 바라며 환경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며, 그 범위에서 자기 자리를 곧게 지키며, 커다란 움직임 없이 묵묵히 자기 작업세계에만 몰두 할 수 있는 작가들이 모인 것이다. 지극히 수공업적인 성격의 방법이나 자기 호흡을 가다듬으며 끊임없이 자기작업세계에 천착해 있는 작가들. ‘Flexible’은 그렇게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젠 이와 같은 목적으로, 또 다른 형식을 추구하는 작가들의 소그룹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작업의 본질이 비슷하거나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서로 격려하며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일반 관객들도 관심을 가질 테고, 청주에서 미술하는 것이 신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층은 젊은층의 작업성향에 따라, 설치와 같은 현대미술의 성격에 따라, 각기 독특한 개성을 가진 소규모 미술그룹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지기를 기대한다. 그것만이 청주 미술 판에 흥을 돋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전시 주제는 ‘I am paper'전이다. 종이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것, 기본적인 것을 활용하고 선호하는 작가들이 종이가 갖고 있는 이야기를 정리해보고 싶은 것이다. 종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미술 출발점의 기본선상에 있는 존재다. 그럼에도 하찮고 우습게보았던 재료였고 그것의 고유한 물성을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 과정이, 작가의 작업 행위자체가 고스란히 작업에 드러나는 작가의 작품들이 발표되는 셈이다. 여기에 공통점이라면 시간성 부여다. 종이에 잉크나 연필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드로잉 하는 작업, 종이를 어떤 형태로 반복적으로 오리는 작업, 종이에 실로 바느질하는 작업 등이 부가적인 기술로 등장하게 된다.

박계훈 작 ‘달항아리’

박계훈은 우선 다른 사람들의 작품이 모두 걸린 다음 그 공간을 활용해 작품을 설치할 예정이다.

개인적인 작품 전시보다는 그룹, 팀적인 요소가 보여 지기를 바란다.

자신의 작품과 걸릴 공간이나 동선에 대한 탐색 역시 이번 전시에 내세울 개인적인 컨셉이다. 작품은 종이에 조선백자 달항아리 형태를 오리는 일이다.

전 보다 더 작게 밀도를 좁혀 오린 달항아리가 모여 큰 달항아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달항아리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혹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유리 상자 안에 설치할 예정이다.

평면작업이면서 입체적인 효과를 생각하는 디스플레이가 될 것이다.

신현경 작 ‘매우 연약한’

신현경은 한지에 색실로 바느질한 작업을 선보인다.

‘매우 연약한’(14.5x10cm)이라는 제목을 단 이 작품은 언뜻 보면 한 송이 아름다운 장미꽃 봉우리를 닮았다.

또는 목에 두르는 따듯한 느낌의 목도리를 닮았으며 소용돌이치는 물결을 닮기도 했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그 안에, 작가가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며 연약한 자신을 다스리고 있는 시간성이 읽히는 것이다.

이미숙 작 ‘자연으로부터- 움직임’

이미숙은 ‘자연으로부터 -움직임’(한지위에 잉크, 74x143cm)이라는 작품에서 지극히 절제된, 최소한의 조형요소를 이용한 표현방식을 보여준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 한가운데 직사각형의 바지들이 빨래처럼 널려 있는 모습 같다.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이리저리 흔들릴 기세다.

지극히 단순한 형식을 통해 제목처럼 자연과 움직임이라는 내용을 탐색한 작품이다.

임은수 작 ‘당신의 초상’

임은수의 ‘당신의 초상’은 종이에 무수한 선을 긋는 드로잉작업이다. 누구의 얼굴인가.

어딘가를 응시하는 얼굴이고 무엇에 몰두하는 얼굴이고 그저 물끄러미 사색하는 얼굴이다. 때로는 단호하고 때로는 무심하다.

종이에 반복적인 선을 그어 ‘얼굴’이라는 형태를 완성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작품인 셈이다.

채명숙 작 ‘작품 1’

채명숙의 작업(‘작품 1’)은 Z모양으로 접은 종이 위에 Z문양을 끊임없이 오리는 일이다. 모양과 문양이 겹쳐져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 면에 오려진 면이나 남겨진 면, 오려진 부위에 빛이 전달되어 드러나는 저 너머의 경계가 또 다른 형태를 만들어간다.

아득한 길이기도 하고 오를 수 없는 높은 고층 빌딩을 연상시키는 작업이다.

황신실 작 ‘겹’

황신실 역시 끊임없이 반복된 드로잉의 결실이다. 날카로운 연필이나 먹물을 이용한 무수한 선긋기가 너무나 촘촘해, 거대한 산맥이나 동물의 털가죽이 종이 위에서 벌떡 일어설 것처럼 입체적인 느낌이 난다. 작품 ‘겹’은 검정 동물 털가죽을 엎어 놓은 것 같다. 중심에서 퍼져나가는 물결이 너무나 입체적이어서 터럭 한 올 한 올이 살아 바람을 일으킬 태세다. 클로즈업된 사진 같다.

이렇듯 ‘Flexible’ 작가들의 전시 ‘I am paper'전은 완성된 작품 보다는 작품이 완성되는, 치밀하고 섬세한 과정들을 섬뜩할 만큼 적나라하게 상상해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기획전이 청주의 전시에서 머물지 않고 타 지역으로 나들이를 해 많은 사람들과 작품세계를 공유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어 청주의 미술 판에서 국제적인 스타도 탄생되고, 신명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란다. 전시문의 043) 268-0070.


김정애/ 문화담당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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