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힘겹다

2016.07.28 14:19:50

김홍성

충북인재양성재단 사무국장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30도를 훌쩍 넘는 더위가 도무지 식을 줄 모르고 7월의 대지를 달구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어쩌다 기상청이 내보내는 비 소식마저 헛방이기 일쑤라 찜통더위 속에서 느끼는 불쾌지수는 여지없이 상승하고 만다. 한반도의 기후 특성상 장마전선의 이동경로를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그 고충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예보를 믿고 하루 계획을 세운 이들 역시 멀쩡히 당한 분풀이를 어디에 해야 할 지 대략 난감한 일이기도 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처럼 맹렬한 폭염이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만큼 지구에 이상신호가 오는 것이라고 봐야 할 텐데 모두들 만성이 되어 어느 순간 '솥 안의 개구리'가 되는 건 아닌지 한편으로는 불안스럽다.

익히 아는 것처럼 작년 8월 초인가는 청주에서 한바탕 물난리가 났었다. 장마나 홍수로 인한 비 피해가 아니라 청주시가 관리하는 정수장의 문제로 인해 며칠 간 수돗물이 끊겨 금천동, 용암동 일대 많은 주민들이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마침 용정동에 사는 우리도 그 지역에 속해 피난민 대열처럼 물통을 들고 급수차로부터 그야말로 생명수를 공급 받으며 '연명'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게 바로 1년 전의 일인데 당시 불편했던 걸 생각하면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잘 갖춰졌다고 믿었던 현대사회의 시스템이 헝클어졌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아주 생생하게 목격했기에 말이다.

정국은 또한 어떠한가. 여기는 여기대로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어지럽다. 나라를 뒤흔들만한 대형 이슈들이 속속 등장하는데 해법은 보이지 않고 점점 더 꼬여만 가는 것이다. 사드가 그렇고 우 수석이 그렇고 공천녹취록이 그렇다. 그 와중에 세월호는 시야에서 사라져 통곡하는 유족과 극히 일부 걱정하는 사람들만 애가 탈 뿐 책임질 이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나 같은 범부가 볼 때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찌 세상은 이리 태연하게 돌아가는지. 백 번을 양보해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다. 거기에 지체 높으신 분 가끔 등장하여 해석 불가능한 궤변으로 속을 뒤집어 놓을 땐 그야말로 멘붕이다. 범접할 수 없는 혼돈의 아우라. 와, 강적이다. 내가 졌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피서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늦은 저녁이면 차량으로 가득 찼던 아파트 주차장에 듬성듬성 빈자리가 보이는 걸로 미루어 짐작이 간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치열하게 달려왔던 일상을 벗어나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들과 같이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게. 여름바다와 계곡은 그들을 맞아 갖가지 추억을 제공하고 쏟아지는 밤하늘 별빛 속에서 사랑과 우정이 그렁그렁 익어갈 것이다. 요즘 따라 고도화된 캠핑 문화로 인해 집을 나서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고 하니 피서지에서 얻는 낭만은 필시 재충전의 동력이 되리라. 다만 오고가는 길 무엇보다 안전하게, 여럿이 머무는 곳 서로를 배려하면서.

나도 곧 휴가를 떠날 것이다. 어디로 간들 속세의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랴만 잠깐만이라도 미지의 땅에 머물며 뒤엉킨 머릿속을 씻어내고 싶다. 발길 닿는 곳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의 삶 가운데서도 서로가 통하는 상식과 교양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다들 입버릇처럼 말한다. 내 집처럼 좋은 곳이 없다고.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누가 이 말에 토를 달겠는가. 하지만 아쉽게도 '헬 조선'의 암울한 그림자는 이 말의 당위성을 압박해 오고 있으니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지.

행여 풀 죽은 기상청의 예보가 신중 정확해지고, 엉성한 청주시의 행정이 보다 날렵해지고, 높은 데 있는 분들 정신 차려 오로지 국민 위하는 정치를 해준다면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힘겨운 여름, 혼미한 가운데 중얼중얼 엉뚱한 상상으로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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