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생명이다

2016.03.24 14:36:53

김홍성

충북인재양성재단 사무국장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고 있다. 밖을 나서면 어느 틈엔가 몰라보게 달라진 기온이 따뜻한 햇살과 함께 몸을 감싸 포근하기가 아주 그만이다. 거기에 살랑살랑 미풍이 된 바람까지 얼굴을 간질이면 온 세상이 내 것이라도 된 양 행복감이 밀려온다. 파릇파릇 올라오는 풀들의 이파리와 나무의 새순들은 또한 어떠한가. 겨우내 앙상했거나, 짓밟혀 흔적조차 없던 녀석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물을 머금고 기지개를 켜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안겨준다. 그런 생명의 속삭임이 신비로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수줍은 듯 앙증맞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아 나도 몰래 미소를 머금게 된다.

들판에 가득했던 볏짚뭉치(곤포사일리지)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메운 봄기운이 농부들을 불러내었다. 다시 팔을 걷어 부치고 농사 채비에 나선 그들의 일손이 바빠질수록 저 들판은 곧 채워질 것이며, 그 속에서 작용한 생명의 신비는 우리에게 많은 산물(産物)을 안겨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득하게 흘러간 어릴 적 생각이 난다. 거머리, 우렁이, 미꾸라지, 개구리.. 농사일을 돕는답시고 남의 논에 들어가 한두 번 모심기에 나섰던 적이 있다. 흙탕물을 튀겨가며 장난하듯이 일을 했는데 그때마다 다리에 달라붙던 거머리들, 지금은 다 어디로 갔는지. 우렁이도 많이 보였었는데 식용으로 쓰는 것은 고사하고 그것을 농법으로 활용하여 소출과 미질 향상에 도움을 주는 데까지 발전하게 될 줄이야.

겨울철 시골 고향에 가면 수로 쪽 꽁꽁 언 논을 삽으로 마구 헤집어 찐득한 흙속에서 겨울잠에 빠진 미꾸라지를 잡는 집안 형들을 보곤 했다. 난데없는 습격에 녀석들 꼬물꼬물 발버둥을 치며 버텨보지만 만사휴의, 잠깐 사이에 한 주전자 가득 미꾸라지를 잡아 올린 전문 꾼들, 그런 형들의 모습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던지. 그때는 몰랐었다. 어리기도 했지만 그저 하나의 놀이로, 심심풀이로 자연과 공생하면서 그런 정도는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광경이었으니까. 개구리는 나도 많이 잡아보았다. 동네 양계장 주인아저씨가 잡아오는 대로 뭐 먹을 걸 주었던가, 돈을 얼마 주었던가. 어린 마음에 작대기와 깡통을 들고 논두렁을 휘저으며 친구들과 의기양양하게 개구리 사냥을 하고 다녔으니 돌이켜 생각하면 오금이 저린다. 철부지 시절이었지만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시만 하더라도 흔해 빠져서 하찮은 듯 보였던 그런 생명체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이제야 깨닫게 된다. 양산과 편의라는 인간 중심의 관점으로 그들을 희생양 삼아 달려온 지난 시간이 두려워지기까지 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요즘 들어 부쩍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끔찍한 소식이 가슴을 친다. 아동들에 대한 범죄에 관한 것인데 자기 아이를 유기하고 학대하는 것은 물론 살해 후 암매장까지 한 부모가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이다. 더구나 그 중 하나가 가까운 우리의 이웃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는 소식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봄은 먼 들판에서부터 온다.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그걸 말해준다. 땅속에서 솟구치는 막아낼 수 없는 기운이 열로 변하여 우리 눈에 비치는 것일 테다. 그 아지랑이를 따라 엄마가 물어온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뾰족한 부리를 서로 내미는 제비새끼처럼 이름 모를 풀들이 고개를 내밀며 일제히 합창을 한다. 초록빛 바다가 따로 없을 정도로 들판에 가득한 무수한 생명들, 그걸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도와 같은 봄의 전령들은 우리의 눈을 더욱 황홀하게 만들 것이다. 그야말로 경이롭지 않은가. 이 장엄한 봄의 향연이.

이 봄을 맞아 우리 생명의 기운을 덧입혀 보자. 꿈으로 세상을 밝혀 보자. 메마르고 강퍅해진 우리의 가슴을 따뜻한 기운으로 채워보자. 그리하여 흉흉한 이 세상 서로에게 작은 등불 되어 희망을 속삭여 보자. 더 이상 슬프고 암울한 소식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이 봄을 함께 노래하자. 무엇 하나, 이 땅의 민초들로 하여금 처진 어깨를 일으켜 세울만한 티끌 같은 단서조차 없는데 아무런 대가없이 우리에게 주는 따사로운 볕이라니. 그에 힘입어 다가오는 4월의 봄, 누구랄 것 없이 희망의 세상으로 달려간다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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