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오른 봄이 산 정수리를 기어오른다. 진달래, 개나리에 이어 산수유, 산 벚꽃이 겨우내 감춰뒀던 꽃봉오리를 슬금슬금 내민다. 종달새는 봄의 한 자락을 베어 물고 상당산성을 한 바퀴 돈다.
멧부리가 험난하지 않고, 고만고만한 산들이 어깨를 포갠 상당산성. 겉보기엔 평화로운 뒷동산 같아도 그 이면에는 역사적 고초를 이겨낸 삶의 땟국이 진하게 녹아 있다.
백제나 신라가 토성으로 초축한 것으로 추측되는 상당산성은 숙종·영조 연간인 1716년부터 1748년까지 절반 이상이 석성으로 개축되며 전시산성으로서의 모습을 완벽히 갖추게 됐다.
당시 상당산성의 대대적 업그레이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기인한다. 16세기, 17세기 양 난을 겪은 조선은 활과 창, 칼이 더 이상 전쟁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17세기 후반부터 전국의 주요 산성에 화포와 조총을 도입한다. 이 때 등장한 건물이 '포루(砲樓)'다. 화포를 쏘기 위한 누각이란 뜻인데 성의 동·서·남·북 주요 지점에 설치됐다.
지난 1999년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의 종합지표조사 및 문헌자료조사 결과, 상당산성에는 15개소의 포루(각 정면 2~4칸, 측면 1칸)가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으로 따지면 '칼빈 소총'을 쓰다가 'K-9자주포'를 도입한 셈인데, 그 이후엔 큰 전쟁이 없어 실제 발포할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포루는 적(敵)의 동향을 살피는 요새(要塞) 역할도 했다. 상당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북포루에선 청주 인근을 한 눈에 관찰할 수 있었다. 동으로는 초정 이티봉, 북으로는 괴산 모래재와 음성 백마령, 서로는 옥산과 조치원까지 보였다.
지금은 모두 멸실된 상당산성 포루를 복원하기 위한 첫 걸음인 '북포루 발굴조사'가 2일 문화재청으로부터 사업 승인을 받았다. 60일 간의 조사를 통해 정확한 위치와 규모가 확인되면 본격적인 복원사업에 돌입하게 된다.
산성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역사의 그리움과 통합 청주시의 새 바람을 맞이할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