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화합’과 ‘不事二君’

2007.10.16 22:05:43

부귀도 영화도 다 버리고 거룩한 죽음으로 청사(靑史)를 빛낸 이들이 있다.
바로 ‘사육신(死六臣)’이다.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 조카(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왕좌에 오른 세조의 회유를 떨쳐내고 죽음을 선택한 이들이다.
성삼문은 세조가 자신에게 돌아오면 용서해 주겠노라 여러 번 회유했으나 끝까지 세조를 ‘나으리’라 부르며 한 임금(단종)을 섬기겠다는 절의를 굽히지 않았다.
성삼문 등은 대역죄를 쓰고 결국 군기감 앞에서 사지가 찢기는 능지처참의 극형과 함께 멸문지화를 당했다.
또 있다.
‘두문동 72현’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의 충신과 왕족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송악산 깊은 계곡 두문동이라는 곳에 들어가 살았다.
두문동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은다고 해서, 여기서 ‘두문불출’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토록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여기거나 세상을 등지면서 지키고자 했던 절의는 무엇이었던가.
‘불사이군(不事二君).’
전국시대 제나라가 연나라의 침략을 받아 항복을 권유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신하로서의 절개를 지키며 자살한 충신 왕촉.
왕촉이 말하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忠臣不事二君 烈女不更二夫)고 했다.
지금 이 ‘불사이군’을 논한다면…….
비웃음을 살까?
한나라당 충북도당이 지난 11일 이명박 대통령 후보 충북선거대책위원회 인선을 마무리했다.
전직 국회의원과 장관, 자치단체장, 전·현직 지방의원, 학계, 기업인 등 모두 170여명의 선대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직전 도당위원장이 배제되고 친박(朴) 성향의 여성본부장 인선을 놓고 당내에서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한나라당 충북도당은 이 같은 갈등을 대충 덮어두고 15일 도당사 강당에서 대선 승리를 다짐하는 선대위 발대식을 갖는다.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이명박·박근혜 후보측으로 양분돼 ‘난투극’을 벌였던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다.
화합을 내세우며.
그러나 선대위 인선을 끝내기까지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 만큼 상대를 헐뜯기에 혈안이었던 이들이었건만 그 어느 누구도 ‘두문동’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의리를 논하려면 정치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또 누군가 그랬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그런데 단 한 사람이 나섰다.
경선 당시 박 후보의 충북지역 언론특보와 충북경선대책위 대변인을 맡았던 이정균 포럼충북비전 공동대표다.
이 대표는 “화합이라는 미명 하에 명분 없는 직책을 맡는 행위는 진정한 화합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지적한다”며 충북선대위 대변인직을 정중히 사양했다.
어제까지 상대에게 칼날을 들이댔다가 오늘은 바로 칼집에 넣는 사람들 속에서 비록 발길은 돌리지만 결코 그 칼을 칼집에 감추지 않았다.
진정 우리 정치판에는 절개와 의리는 없는 것인가?

/강신욱<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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