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낙상 줄이는 디카페인 커피의 새로운 값어치

2024.05.02 15:01:56

박영순

'커피인문학' 저자

커피 생두에서 카페인을 제거한 '디카페인 커피'가 급속하게 시장을 키워가고 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디카페인 커피라고 하면 '커피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 찾는 하찮은 것쯤'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2023년 디카페인 커피 수입량이 6521t으로 5년 전인 2018년에 비해 278% 증가했다. 한 대형 커피 전문회사가 국내에서 2017년부터 디카페인 커피를 음료로 팔기 시작해 누적 판매 1억 잔을 돌파했다며 기념행사를 벌이는 것이 단지 호들갑스럽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사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회에서 디카페인 커피가 유행하게 되는 것은 운명적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커피 디톡스(Coffee detox)에 대한 욕구가 거세지는 현상'이다. 매일 커피를 마시던 사람이 하루라도 건너뛰게 되면 두통이나 불안감, 우울증 등 금단증상을 겪기 쉽다. 커피를 즐기기 전에는 경험하지 않았던 금단증상이 강해지면서, 커피를 '건강을 위협하는 독소'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음용자들 사이에서 커피 복용으로 인해 몸에 쌓이는 듯한 해로운 무엇인가를 디톡스, 곧 해독해야 한다는 다급함이 생기게 된다.

디톡스의 대상은 단연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카페인이다. 카페인 복용량을 줄이면서 민감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커피 한 잔에 담기는 카페인의 양을 줄이기 위해 버섯 성분이나 시나몬, 치커리 등 다른 성분을 채우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커피 디톡스의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카페인을 90% 이상 제거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디카페인 커피에는 클로로젠산, 트리고넬린, 멜라노이딘 등 생리활성물질이 일반 커피와 비슷하게 들어 있어서 커피가 발휘하는 건강효과를 누릴 수 있다. 맛도 일반 커피와 그다지 다르지 않고, 신맛이 줄어들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디카페인 커피의 값어치를 더욱 높이는 소식이 요양원에서 들려왔다. 영국의 '텔레그라프'가 레스터대학교(University of Leicester)의 보고서를 인용해 전한 내용인데, 요양원에서 노인들에게 제공하는 커피를 디카페인 커피로 바꾸었더니 낙상 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2023년 6월~11월 영국의 8개 요양원(노인 약 300명 수용)에서 제공되던 일반 커피를 디카페인 커피로 바꿨더니, 노인들의 낙상 사고가 35% 감소했다. 카페인 섭취를 줄임에 따라 배변 욕구가 덜 자극받는 덕분에 밤에 화장실을 가는 빈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카페인은 과민성 방광이나 요실금이 있는 노인들을 자극해 화장실을 더 자주 가게 만든다. 낙상은 75세 이상 노인의 부상으로 인한 사망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원인이며, 특히 화장실에 가기 위해 서두르는 동안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영국 전체 요양원의 커피를 디카페인 커피로 바꾸는 것만으로 연간 최대 8천500만 파운드(약 1천466억 원)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요양원들도 이 정보를 검증해 도입할지를 검토할 만하다. 노인의 삶에 요긴한 디카페인 커피의 새로운 값어치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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