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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서원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주둥이가 길고 날씬한 주전자로 가느다란 물줄기를 만들어 조심스레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맛있는 커피가 나올까' 하는 기대감에 설레게 된다. 의식을 치르는 듯 커피를 내리는 것은 사실 마음가짐을 가지런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커피 추출을 '다도(Teaism)'와 견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핸드드립(Hand drip)'이라고 부르는 일본식 커피추출 문화에서 비롯됐다. 커피를 맛있게 추출하려면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러나 일본식 핸드드립을 일각에서 꽤 오랫동안 맹종(盲從)하는 바람에 커피 추출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깊게 배이면서 고질병처럼 된 게 있다. 물을 붓는 방식이 커피의 맛을 좌우할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이 그것이다.

커피 입문자들로 하여금 커피의 맛이 물을 어떻게 붓느냐에 따라 결판이 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 것은 앞선 세대의 잘못이다. 핸드드립에서 커피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마땅히 어떤 커피를 사용했느냐가 돼야 한다. 공들여 추출한 커피의 향미가 떨어지는 이유를 '물줄기가 굵었네' '주전자를 두 바퀴 덜 돌렸네' '물줄기가 갔던 길을 또 갔네'라는 식으로만 분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접시에 담긴 회를 맛보고는 어떤 생선을 손질한 것인지를 따져보지도 않은 채 '칼질이 잘못됐다' '결이 어긋났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상한 생선으로 회를 쳐 먹을 수 없듯이 질이 떨어지는 커피 원두로 좋은 향미를 이끌어 낼 수 없다. "나의 손을 거치면 어떤 원두이든 맛 좋은 커피가 만들어진다"고 장담하는 것은 기만이다. 그렇게 선전하며 커피를 팔거나 교육을 한다면 상술이다. 혹시 '우리가 일본에서 커피를 배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서 막연하게 동경하거나 그것을 기준으로 간주하는 것이라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핸드드립이라고 불리는 커피추출법을 일본이 만든 것도 아니다. 바닥에 구멍이 있는 드리퍼(dripper)라는 도구에 종이필터를 올린 뒤 커피가루를 담고 물을 부어 추출하는 방법을 발명하고 특허를 낸 주인공은 1908년 독일의 멜리타 벤츠(Melita Bentz) 여사였다. 이것을 1920년대 일본이 특허를 피하기 위해 모양을 살짝 바꿔 시판한 것이 원추형의 고노(Kono)이다. 칼리타(Kalita)는 1950년대에 개발됐다. 사실 개발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멜리타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바닥에 구멍을 2개 더 뚫고 드리퍼의 경사면과 골 형태만을 달리했다. 명칭이 '멜리타에서 따온' 또는 '멜리타를 흉내 낸'이라는 의미를 지닌 '가라 멜리타(가짜 멜리타)'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커피의 독일어 표기(Kaffee)와 필터의 영어표기(Filter)를 조합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일본의 커피 장인들이 칼리타와 고노를 사용하면서, 커피의 맛이 전적으로 물 붓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고 작정하고 상술을 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같은 커피라면'이라는 전제 하에서 물 붓기 방식이 맛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누군가에 의해 잘못 전해지고 있다. 그 요인 중의 하나로 '일본은 우수하다'는 이른바 '커피계의 식민사관'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어디에서부터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할까· 그것은 단연 한국 커피 역사의 뿌리에 관한 것이다. 일본의 커피 역사가 한국보다 적어도 120년, 많게는 200년 이상 앞섰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일본이 조선에 커피를 가르쳐 줬다는 것은 억지이다. 1700년쯤 나가사키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상륙하면서 일본에 커피가 전파됐다고 주장하는 식이라면, 1653년 효종 때 제주도에 표류해 13년간 조선에 머물다간 36명의 하멜 일행은 무엇인가· 더욱이 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커피를 실어 나르던 네덜란드 선박의 선원들이었다. 또 일제 강점기보다 훨씬 앞선 1890년대 이미 독립신문에 자바커피를 판매한다는 광고가 실렸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우리의 커피 문화에 잘못 배어 있는 일본의 자취를 마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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