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단상

2024.04.16 14:07:50

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이른 아침, 한영애의 노래 '조율'을 듣게 되었다. 사월에 듣는 이 노래는 유난히 그 울림이 크고 여운이 길게 남는다. 겨우내 침묵하던 나뭇가지에 꽃눈이 박히듯 노랫말 하나하나가 귀에 들어오고 가슴에 파문의 동그라미가 생겼다가 사라지곤 했다. 종일 귓가에 맴돌고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기도 했다.

태풍 같은 사월의 선거 바람이 지나자 삐걱거리며 억지스러웠던 시간들이 제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또한 세월호의 깊은 생채기가 너덜너덜 아물지 못한 채 또다시 온 국민의 마음을 후벼 파는 사월이다.

가까운 곳의 작은 일상들이 더 값지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사월. 노랫말 가사를 다시 음미해 본다. 천천히 소리 내서 읽으며 마음을 추슬러 본다.

알고 있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알고 있지 철새들은 가을하늘 때가 되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지고지순했던 우리네 마음이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정다웠던 시냇물이 검게 검게 바다로 가고/드높았던 파란하늘 뿌옇게 뿌옇게 보이질 않으니/마지막 가꾸었던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끝이 나는 건 아닌지/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미움이 사랑으로 분노는 용서로 고립은 위로로 충동이 인내로 모두 함께 손 잡는다면/서성대는 외로운 그림자들 편안한 마음 서로 나눌 수 있을텐데/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우 내가 믿고 있는 건 이 땅과 하늘과 어린 아이들/내일 그들이 열린 가슴으로 사랑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도록/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사월에 태어난 나에게 사월은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감수성이 예민한 편이다. 자연을 좋아해서 늘 공원이나 숲길 걷기를 좋아하는 데, 오롯이 자연과 벗하는 그 순간이 매우 고맙고 즐겁고 행복하다. 나무와 꽃과 이야기를 나누고 바람과 노을과 하늘과도 안부를 주고받는다. 일교차가 심한 요즘에는 이팝나무와 은행나무 새순이 하루에도 새끼손가락 한 마디씩 자라는 모습이 보인다. 처음 이 나무들이 새순을 내밀기 시작할 때는 산책을 하며 발바닥과 손바닥은 물론 온몸의 살갗이 간지러워 따로 움직여 보기도 했다. 지금은 성큼 자라 나무에 초록이 오르는 중이다.

어머니의 사월도 그런 모양이다. 한번은 어머니와 통화를 하던 중, 벌써 미선나무꽃이 다 졌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 후, 며칠 뒤에는 아주 햇볕이 좋은 날이었는데, 어머니 음성에도 기분 좋은 햇볕이 깃들었다. 바로 그날이 말날에다가 장을 담그는 날이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기운찬 목소리를 들으니 참 좋았다. 예전부터 장을 담그는 날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말날, 돼지날, 닭날에 주로 장을 담그며, 특별히 소금을 구입하는 날에는 언제라도 장을 담글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께 지혜로운 조상들의 전통문화를 전해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고 따뜻해진다.

자연의 질서와 지혜로운 일상을 찾아 모두 편안한 일상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율'의 노랫말처럼 열린 가슴으로 사랑의 의미를 실천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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