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병사가 되살린 회충의 기억

2017.11.19 13:15:28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기생충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총상을 입고 수술한 JSA 귀순 북한 병사의 배에서 수많은 회충이 발견돼서다.
 병사의 총상을 치료하고 있는 담당 의사는 "외과 의사 경력 20년 만에 이렇게 큰 기생충을 본 건 처음"이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병사 몸에서 발견된 가장 큰 기생충은 길이가 무려 27㎝에 달한단다.
 실뱀처럼 엉켜 있는 회충의 성충을 이국종 교수는 수술 중 일일이 손으로 잡아냈다고 한다. 굵은 지렁이처럼 생긴 회충은 근육질로 이뤄져 지렁이보다 훨씬 운동성이 좋고 행동이 빠르다는데, 50마리 이상의 꿈틀대는 회충을 집어내며 기가 막혔을 것이다.
 봉합한 소장 속에 아직 남아있는 크기 1㎜ 이하 기생충이 약 2주 후면 10㎝ 크기의 성충으로 자라기 때문에 장 파열 위험성이 높다니 걱정이다.
 기생충 감염에 의한 질환은 저소득국가의 풍토병이다. 우리나라 역시 위생 상태가 열악했던 1990년대 이전에는 대다수의 국민이 회충에 감염됐을 정도의 국가적 질환이었다.
 구미가 당기거나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의미로 '회가 동한다'는 말을 쓴다. 여기서 회는 생으로 먹는 음식인 회(膾)가 아니라 회충의 회(蛔)다. 곧 회충이 먼저 알아채고 뱃속에서 움직일 만큼 '음식이 매우 먹고 싶다'란 뜻인 것이다. 회충이 얼마나 친숙한 기생충이었으면 일상에서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썼을까 싶다,
 1950년대 말 미군 군의관이 한국군 환자 장에서 양동이가 가득 찰 정도로 많은 회충을 매일 빼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장에서 놀던 회충이 입으로 기어 나오는 엽기적인 상황도 종종 벌어졌다. 가엾고 부끄러운 역사다.
 1960년대엔 회충 1천63마리가 소장을 꽉 막는 바람에 숨진 9세 여아의 기생충 사망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이 해외토픽으로 전 세계에 보도되면서 망신살을 입게 되자 정부가 나서서 대대적인 기생충 박멸 운동을 벌이게 된다.
 기생충 퇴치를 위해 1960년대 기생충박멸협회가 창설되면서 1971년 84.3%의 감염률이었던 기생충 감염률은 2004년 4.3%로 급격히 감소했다. 이러한 결과로 한국은 기생충 박멸 모범 국가로 소개되고 있다.
 기생충박멸협회가 기생충퇴치를 위해 우선 실시했던 일이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기생충 검사였다. 대변검사를 통해서 각종 기생충 알의 유무 등을 조사했는데, 매년 담임선생님이 손가락 길이쯤의 비닐 채변봉투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학생들에게 수거한 채변봉투를 기생충박멸협회로 보내면 협회에서 검사 후 결과에 따라 약이 전달됐다. 이 약이 바로 유명한 추억의 구충제 '산토닌'이다.
 회충과 요충, 편충을 없애는 산토닌은 시나쑥, 쿠람쑥의 시나꽃에서 추출한 약으로 1830년 독일에서 처음으로 결정추출에 성공했다. 시나꽃의 약성은 로마시대부터 알려졌다는데, 산토닌은 시나꽃을 약으로 썼던 프랑스 남서쪽 아키텐지방의 원주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공복에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산토닌을 받는 날은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갔다. 아이들은 어른이 복용해도 눈앞이 노랗고 머리가 흔들리는 회충약을 빈속에 삼키고 구역질과 두통을 견뎌야 했다. 시간이 지나 약효가 회충에게 전달되면 죽지 않으려고 요동치는 회충 때문에 배는 또 얼마나 아프던지.
 산토닌을 먹고 난 다음날은 반드시 선생님께 회충이 몇 마리 나왔는가 보고를 해야 했다. 지나고 나니 이러한 구충소동도 웃음으로 기억된다.
 북한관련 유머 중에 북한군이 전투적으로 기생충을 박멸하는 방법이란 것이 있다. 소변을 참아 익사시킨다. 대변을 참아 압사시킨다. 방귀를 참아 질식사시킨다. 밥을 굶어 아사시킨다. 이렇게 4종 세트다. 구충제 한 알도 아쉬운 북한군 병사의 열악한 상황이 의사도 놀란 귀순 북한 병사의 회충으로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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