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내수읍에 위치한 장호식당. 남편 이용옥씨가 나고 자란 집터에 지은 가게에 아내 김장호씨의 이름을 붙였다.
[충북일보]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담긴 밥은 맛이 없다고들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어요"
지난 1999년 문을 연 장호식당의 안주인 김장호 대표는 단호한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장호식당은 19년째 스테인리스 그릇에 밥을 담아내고 있지만 한 번도 밥에 대한 불만을 들어본 적이 없다. 김 대표가 고집하는 '맛있는 밥'은 언제나 갓 지은 밥이기 때문이다.
돌솥 밥에 짓기 위해 밥을 물에 오래 담가두면 쌀이 아무리 좋아도 본연의 구수함마저 빠져버린다. 장호식당에서는 잠깐 물에 담갔다가 건져두고 손님들이 들어오는 대로 밥을 안친다. 압력밥솥이 김을 내뿜을 때 함께 나오는 구수한 향기는 언제나 김 대표의 활력소다.
김장호 대표가 갓 지어 담은 밥을 들어 보이고 있다.
내수에서 나고 자란 김 대표는 한해 선배였던 남편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다. 지금의 장호식당은 김장호 대표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지만 남편이 나고 자란 옛 집터이기도 하다. 내수는 부부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식당을 하게 됐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어머니가 해주시던 돼지고기찌개였다. 뚝배기에 돼지갈비를 끓여내는 '뚝배기갈비찌개'와 돼지사태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이던 '보글보글찌개' 두 가지 메뉴에 집중했다.
남편의 이름인 '용옥식당' 보다는 '장호식당'이 발음하기 좋아 '장호식당'으로 정했다.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이름을 건만큼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게 됐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두 팀만 함께 들어와도 안절부절 이었다. '왜 저들은 일행도 아니면서 함께 들어올까' 하는 생각이 '점심시간이니까 당연하구나'로 바뀌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허둥지둥하는 모습에도 손님들은 계속 늘었다. 그야말로 맛으로 승부가 난 거다. 신선한 돼지고기를 끓여낼 때 쓰는 고추장부터 김치와 장아찌까지 직접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 바로 무쳐낸 반찬과 갓 지어 퍼 담은 밥은 장호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는 상징적인 음식이 됐다.
오늘 잘 되도 내일이 불안했던 시간은 3년쯤이었다. 3년이 지나자 비로소 자신감이 생겼다. 김 대표는 그때부터 겨우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었다며 웃었다. 10여년을 줄서서 먹는 맛집이었고 지금도 점심시간이면 5분도 안 돼 자리가 없다.
인근에 있는 사격연습장 때문에 사격선수들에게도 유명한 식당이다. 훈련이나 경기를 위해 사격연습장을 찾는 선수들은 꼭 장호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간다. 특별한 계절을 타는 음식은 아니지만 체육행사가 있는 계절은 더 북적인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익숙하지는 않아도 체력적으로 괜찮았다. 20여년을 운영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든 게 가장 크다. 일요일만 쉬던 휴일은 토, 일 이틀로 늘렸다.
예전의 휴일은 그나마 쉬는 날도 아니었다. 봉사를 좋아하는 부부는 요양원으로, 꽃동네로, 소록도로 소외된 이웃을 만나러 다니며 휴일을 보냈다.
우연히 들어간 소록도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이후 정기적으로 그들을 만나러갔다. 빨리 가라고 손짓하면서도 뒤돌아 눈물짓는 모습을 보고 애틋함이 더해졌다. 10여년을 맺어온 소록도의 인연은 지난핸가 세상을 떠났다.
나이가 들고 몸이 힘들어 지면서 더욱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훗날 가게를 정리하게 되면 꼭 부부가 함께 봉사를 다니며 살자고 약속했다.
부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웃들도 많겠지만 장호식당의 단골손님들은 이들 부부의 노후 계획이 먼훗날로 미뤄지길 바랄 것 같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