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 좋은 집 - 옥천군 옥천읍 '마당넓은집'

2017.07.18 10:22:12

편집자

밥의 사전적 정의는 쌀, 보리 등의 곡식을 씻어 솥 따위의 용기에 넣고 물을 알맞게 부어 낟알이 풀어지지 않고 물기가 잦아들게 끓여 익힌 음식이다. 밥은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들이 무언가를 씹을 수 있을 때부터 먹기 시작해 더 이상 씹을 수 없게 될 때까지 평생을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맛을 느끼는 미각은 개인의 경험과 주관에 따라 달라지지만 갓 지은 '밥'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때 한술 크게 떠 입에 넣어본 사람이라면 밥만 먹어도 맛있다는 말에 수긍할 것이다. 많게는 하루 세끼씩, 일생을 먹으면서도 질리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첨가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뿐 아니라 함께 먹는 음식에 따라 다른 맛을 내기 때문이 아닐까.

충청북도에서는 지난 2013년부터 최고 품질의 쌀을 이용해 정성스럽게 밥을 짓는 업소를 '밥맛 좋은 집'으로 선정하고 있다. 2017년 현재까지 도내 103개소의 밥맛 좋은 집이 선정된 상태다. 그들이 밥맛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음식들과의 색다른 궁합을 만들어내는지 밥맛 좋은 집 대장정을 시작해본다.

밥맛 좋은 집 - 13. 옥천군 옥천읍 '마당넓은집'
[충북일보=옥천] 옥천 향수길에 위치한 마당이 넓은 한옥 집은 1960년대만 해도 옥천여중고의 교무실로 쓰이던 건물이었다. 남편을 도와 서예학원을 하던 성화열 대표가 이 집을 갖게 된 건 20여 년 전이다.

8남매 중 막내딸로 자라 오빠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성 대표가 서예를 시작한 것도 오빠의 권유 때문이었다. 우연히 배운 서예가 좋아 깊이 빠졌고 어쩌다 보니 서예가 남편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다.

서예가들의 만남은 왠지 정적일 것 같지만 이들 부부는 묘하게 자유분방했다. 신접살림을 시작할 곳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 서울, 대구, 부산 등 여러 곳을 고민했지만 이렇다 할 느낌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대전에서 옥천으로 가는 버스를 발견했다.
오후 5시, 어스름이 깔릴 무렵 부부는 버스에 올랐고 처음 와본 향수의 고장 옥천에 반해 이곳에 서예학원을 열고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서예 불모지였던 옥천에서 부부의 생활은 순조로웠다.
오며가며 봤던 한옥집이 예뻐 마음에 담자 운명인 듯 부부의 집이 됐다. 옛것을 사랑하는 남편과 그런 것들이 싫지 않았던 아내의 취향이 맞았던 거다. 너른 마당을 가진 이 집은 부부뿐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도 매료시켰다.

일반 가정집으로 사용하던 집인데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담벼락 너머로 시선을 보내던 이들은 집 구경을 해도 되겠냐며 마당에 들어서기 일쑤였다. 성 대표는 화단까지 예쁘게 가꿔 관광객들을 감탄케했다.

오래된 한옥은 손을 안타는 부분이 없었다. 비가 오면 물이 새고 문도 말썽이었다. 제대로 청소를 마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이 곳 저곳 손보려니 집값만큼 돈이 들었다. 한옥이 좋아서 들어온 마당 넓은 집은 그 한옥을 지키기 위해 식당이 됐다.

자유분방한 성 대표의 결단력은 거침이 없었다. 나물 반찬하나는 자신 있던 그녀였다. 평소 지인들에게 칭찬받던 비빔밥을 단일 메뉴로 결정하고 마당 넓은 집을 열었다. 처음 식당을 열었을 땐 식당용 가스버너를 들여놓고 불도 붙이지 못하는 '초짜'였다. 서예학원에서 인연을 맺은 여사님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몇 달간은 창문 너머로 손님이 보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정성들여 손님을 대접하니 금세 입소문이 났다. 멋들어진 한옥에서 받아보는 놋그릇에 담긴 정갈한 차림은 충분히 특별했다. 그녀의 긴장된 웃음조차 손님들에겐 여유로운 친절함으로 느껴졌다.
인근 방앗간에서 도정한 쌀을 이용해 압력밥솥에 짓는 밥은 비빔밥에 맞게 고슬고슬하다. 처음엔 너무 차져 붙어버리던 밥을 다시마와 함께 지어 나물 및 재료들과 어우러지게 했다. 고기 메뉴가 없는 가게의 특성상 건강을 생각하며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 흰쌀밥 대신 흑미를 섞는다.

여리던 심장도 단단해졌다. 13년이 지난 지금은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들어와도 눈도 끔뻑하지 않게 됐다.

마당을 빼곡하게 채운 식물들도 눈에 띄지만 한옥을 둘러싸고 있는 갖가지 골동품들도 특이하다. 성 대표의 남편은 평거 김선기 서예가다. 서예에도 조예가 깊지만 골동품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다. 젊은 시절부터 취미로 수집한 것들이 지금은 전시관을 만들고도 남는다.

가게 뒤편에 마련된 머문시간갤러리는 남편의 수십 년 노고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희귀 레코드판은 물론 택시 미터기나 등잔대 등도 세월을 거슬러 보관돼있다.

향수의 고장에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건 정지용의 시만은 아니다. 마당 넓은 집의 안팎을 거닐고 나면 없었던 향수까지 제대로 머금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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