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권희상 대표가 좋아하는 색으로 칠했다는 '대보명가' 건물. 멀리서도 눈에 띄는 효과가 있다.
[충북일보] 한적한 도로 한편에 건강함을 내뿜는 초록색 건물이 눈에 띈다. '크게 보하고 밝힌다'는 뜻의 대보명가다. 지금은 이름으로도 유명하지만 '남자밥' '여자밥'으로 먼저 유명해졌다.
남자 밥에는 기를 보하는 약초를 넣고, 여자 밥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약초를 주로 넣었다.
색이 다소 진하고 향이 깊은 것이 여자 밥이다. 호기심에 바꿔 먹어보는 손님들도 많지만 괜찮다. 약성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로 10년이 된 대보명가는 5남매 중 막내인 권희상 대표가 큰 누나와 의기투합해 시작한 약초음식 전문점이다. 처음 이들이 주 고객층으로 설정한 건 '수도권 50-60대 여성'이다.
나온 음식을 보고 그들의 정성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정성 담긴 찬들이 많기 때문이다.
권희상 대표가 '대보명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남자밥'·'여자밥'을 들어보이고 있다. 오른쪽에 색이 진한 것이 '여자밥'이다.
건강한 음식에 취미가 없는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의 취향을, 그것도 음식에 대해 잘 아는 여성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자극적인 경향이 있는 제천의 입맛보다는 덜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 수도권의 입맛에 집중했다.
단지 음식에 담긴 정성을 알아주길 바랐던 마음은 더 큰 수확으로 돌아왔다. 각 가정의 메뉴 선택권이 주로 아내들에게 있었던 거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남편들을 앞에 두고 "몸에 좋은 거니까 그냥 먹어요"라며 맛있게 접시를 비우는 아내들이 늘었다.
권 대표는 전직 프로그래머다. 일을 그만두고 고민한 건 정직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거였다. 어려서부터 보고자란 약초다. 어머니의 짐꾼으로 따라나섰다가도 손에 쥐어준 몇몇 약초들을 기똥차게 찾아 한아름 따내던 아이였다.
그런 약초를 활용한 음식들을 연구했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누나의 도움으로 금세 일취월장했다. 수육과 함께 내는 버섯약초 요리 제천약초쟁반은 전국한방요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하면서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에 긴장했지만 계량을 이용한 조리법에는 오히려 강했다. 숫자를 가지고 놀던 그다. 요리를 할 때도 미세한 오차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비율만 알면 배합은 얼마의 양이 됐든 문제없었다. 약초를 저장하는 것도 과학이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약초마다 적합한 저장방법들을 찾았다. 제철에 많은 양을 수확해 그만의 보물창고에 1년 치를 저장한다. 약초가 나는 계절이 아니어도 사계절 변함없는 밥상이 나온다.
어려서부터 언제나 분주히 움직이시는 부모님을 보고 자란 탓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팔순이 넘은 부모님은 아직도 눈만 뜨면 밭에 계신다. 권 대표도 마찬가지다. 가게 인근으로도 드넓은 밭에 각종 식자재가 자라고 있다.
가게에서 사용하는 채소의 상당 부분은 권 대표가 직접 농사를 지어 조달한다. 가게 인근에 펼쳐진 텃밭.
여건에 맞는 장소에서 자라야하는 약초들은 곳곳에 퍼져 대표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가게에서 사용하는 참기름 들기름조차 직접 키운 참깨와 들깨로 대부분을 조달한다.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약초를 심어 기르고, 수확하고, 세척하고, 다듬는 일까지 기계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온전히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조만간 분산돼있는 약초밭을 체계화해 심고 수확하는 일이라도 기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주기적으로 혼자 찾아온 손님이 한 그릇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줬던 게 기억에 남는다. 몇 가지 찬을 물린 비구니 손님들의 발우공양이 감격스러웠다. 얼결에 들어온 젊은 남녀가 고기반찬만 먹고 돌아가는 것은 속상했다. 자신이 음식에 쏟은 정성을 손님들이 알아주면 행복한 거다. 땅에서부터 쏟은 그의 정성이 대보명가를 찾는 손님들의 건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 김희란기자 khrl1004@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