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류 화석과 두 인물

2025.03.27 16:36:06

한범덕

미래과학연구원 고문

과학의 발전은 물리학에서 양자로, 화학에서 소립자라는 더 나눠질 수 없는 미시세계를 연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생물학도 놀랍게 발달하여 몇억 년 전 흙 속에 남아있는 세포에서 DNA를 찾아내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문자가 없었던 선사시대의 연구에는 썩지 않는 금속, 석기, 뼈를 가지고 이론을 세웠던 고고학이 이제는 정확한 연대측정기법과 유기물 DNA 분석으로 정밀한 논증이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관심이 높은 분야는 현생인류의 조상에 관한 연구입니다. 19세기 중반 독일 네안데르탈에서 발견된 인골은 고인류 발굴의 붐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발굴도 오랜 시간에 걸친 전문적 발굴과 연구를 거쳐야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경우에는 수십 년의 노력을 거쳐 이루어진 연구가 대다수 학자들에게 외면당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우연을 가장한 조작된 발견을 획기적 성과로 추앙하다가 4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허위로 밝혀진 사례도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외젠 뒤부아'라는 학자는 의학을 공부한 뒤, 고인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 대학교수직을 마다하고 현장연구를 위하여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갖은 고생을 겪으며 발굴을 진행하던 중 1891년 10월, 현생인류와 비슷한 몸크기에 뇌크기는 오히려 작은 인골을 발굴하였습니다. 나중에 '호모 에렉투스'로 불리는 대단한 발견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진화에 관한 특정 관점에 빠진 학자들은 대부분 이를 무시하였습니다. 자금 지원도 없는 어려움 속에 성과를 올렸다고 생각한 뒤부아의 기대와 달리 두개골 크기를 문제 삼으며 '뇌크기 감소를 유발하는 정신병을 앓는 현대인'의 것이라고 하거나 '거대한 긴팔원숭이'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비하여 뒤부아와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 태어난 '찰스 도슨'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취미로 화석을 수집하는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는데, 런던 골동품학회에 들어가 활동을 하던 중 1912년 인간과 다른 유인원 사이의 연결고리로 주장된 필트다운인이라고 명명된 인골 발견으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학자들에게 외면당한 뒤보아와 달리 도슨은 대영박물관 연구원 아서 우드워드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아 이 인골이 네안데르탈인보다도 더 인류 직계 조상으로, 최초의 현생인류는 영국인이었다는 황당한 이론도 오랜 시간 사실로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953년 대영박물관 연구원 케네스 오클리 등 연구팀이 새로운 연대측정기법으로 이 화석이 조작된 것이라고 밝혀냈습니다. 두개골은 몇백 년밖에 되지 않았고, 턱뼈는 오랑우탄의 것이었습니다. 흥분과 환호 속에 빠졌던 영국인들의 혼돈과 허탈은 상상을 넘어선 희대의 과학 사기 사건이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온갖 어려움을 딛고 이룬 과학성과는 무시되고, 우연을 가장하여 상징을 조작한 사이비 성과에 열광하는 현상은 오늘이라고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 문화공보부에서 문화유산을 관리하면서 수없이 봐온 사례가 생생합니다. 늘 신문 머리기사로 '국보급 문화재 발견''○○유적 발견' 등등 많은 보도가 나오지만 그것이 사실로 밝혀지기까지는 많은 조사와 연구가 있어야 합니다.

가까이 일본에서도 구석기 유적을 조작하는 바람에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되고, 일본 고고학계의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물론 1980년대에 일부 어민들의 신고로 알게 되어 세기적인 발굴 끝에 수습한 '신안해저유물'과 같은 긍정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철저한 고증이 선행되는 학술적인 사업, 특히 선사시대 연구는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고 전문적인 인력과 충분한 시간을 투입하여 진행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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