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건너기

2025.03.25 14:45:49

조준호

수필가

늦은 겨울과 이른 봄이 교차하는 계절. 추위와 따스함이 힘을 겨루듯 엇갈리는 날 시냇물이 흐르는 교외의 작은 커피숍으로 나들이를 갔다. 창밖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던 중 시냇물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냇가로 내려가니 길지 않은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다.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건너고 돌아오기를 몇 차례, 어느새 아내는 징검다리 중간에 앉아 물속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 속 한 장면처럼 징검다리를 사이에 두고 설렘과 조심스러움을 나누던 소년과 소녀의 마음을 떠올리게 했다. 젊은 시절 연애하던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릴 적 징검다리는 냇물이 흐르는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냇물 건너마을로 가려면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중요한 소통의 통로였던 것이다. 그 다리를 통해 사람들의 소식이 전해지기도 하고 외부의 새로운 변화가 마을에 스며들기도 하였다. 물살이 깊고 빠른 냇가에서 징검다리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징검다리 위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읍내의 소식들을 나누기도 했다. 다리가 좁을수록 한 번에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었기에 양보하고 기다려 주는 배려도 징검다리가 주는 교훈이었다.

이렇듯 징검다리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서 세대와 성별,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며 배려하는 역할을 했다. 느리지만 깊고 진실된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서로간의 소통은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이루어 질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징검다리의 역할은 SNS가 대신하고 있다. SNS는 실시간으로 빠르게 소식이 전해진다. 지인들뿐만 아니라 생면부지의 사람들과도 끊임없이 정보와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도와 양이 많아지면서 그 내용 하나하나를 깊이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이로 인해 소통의 진정성이 흔들리고 심지어 '정보공해'라는 문제가 발생되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게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옳다고 믿는 정보만을 취하며 확증편향에 빠지기도 한다. 심지어 AI 알고리즘에 의해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어 두기도 한다.

양극화가 심각한 이 시점에서 징검다리가 지닌 상징성을 되새겨볼 때가 아닌가 한다. 성급하게 상대방에게 다가가기보다 한 걸음 한 걸음 징검다리 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며 건너는 여유가 필요하다. 상대가 지나가기를 기다려 주고 내가 서 있는 이 디딤돌이 흔들리지는 않는지 방향은 맞는지 지금 건너고 있는 냇물의 깊이와 물살의 세기를 살피며 천천히 그리고 안전하게 건너가는 여유가 필요하다. 징검다리 가운데에서 물장난을 치고 있는 소녀의 마음을 알지 못해 바보 소리를 듣지 않고 서로의 마음이 이어지는 그런 따스한 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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