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노래가 있다. 가수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이다. 이 곡이 발표된지 얼추 40년이 됐지만 지금도 시월의 마지막 날 즈음이면 이 노래는 각종 방송을 타고 흘러나온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연인간 애절한 이별을 주제로 한 노래지만 이 노래는 가을을 대표하는 노래로 오랜 세월 자리매김해왔다. 40년전 노래가 요즘 MZ세대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성세대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기억 저편 추억의 편린을 떠올리기도하고, 가을이 무르익음도 자연스럽게 안다. 일종의 '가을 전령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렇게 가을은 여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에게 많은 영감과 느낌을 주는 계절이다. 가을은 또 풍요와 결실의 상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의 풍요로움을 함께 나누며 즐긴다. 그리고 다가올 겨울을 대비한다. 이처럼 가을은 여름과 겨울 중간의 쉼표로서, 덥고 추움의 완충역할을 하면서 누구나 사랑하고 설레는 계절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이런 소중한(?) 가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상기후로 예기치 못한 기상변화가 극심해지면서 가을이 실종되고 있다. 지난 여름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역대급 더위를 겪었다. 한여름 더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처서만 지나면 사그러들줄 알았던 더위는 그후 한달이 지난 추석까지 이어졌다. 유래없는 더위탓에 가을 저녁이라는 뜻이 담긴 '추석'(秋夕) 대신 여름 저녁이라는 의미의 '하석'(夏夕)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극한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이상고온 현상의 여파는 이뿐이 아니다. 강원도 설악산에는 이달들어 때아닌 진달래가 피어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역대급 이상고온을 원인으로 꼽았다. 자연생태계의 혼란뿐만아니라 이상고온과 가을실종은 일상생활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가을을 대비해 각종 가을상품을 준비한 상인들이 울상이라고 한다. 더위가 계속되면서 가을옷과 관련상품 수요가 예년의 절반에도 못미치는데다 12월부터는 역대급 한파가 몰아친다는 예보가 나오면서 아예 찾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상인들은 원가라도 건지기 위해 떨이로 상품을 넘긴다고 한다. 이상기후가 가져온 일종의 나비효과인 것이다. 이런 이상기후의 징후는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차고 넘친다. 얼마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수십년만에 폭우가 쏟아져 사막이 호수로 변했다. 야자수 아래 낙타에 물을 먹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목가적인 풍경의 오아시스가 아니라 거대한 호수로 변한 사막은 멋지고 신비스럽다는 느낌보다는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왔다. 이외에도 수개월간 계속된 호주의 산불, 미국을 잇따라 강타한 허리케인, 남·북극 빙하의 해빙, 그로인한 해수면상승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기후의 징후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달했다. 문제는 이같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의 주기가 매우 빨라지고 그로인한 피해 규모도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상기후가 목전에 다가왔지만 일상 생활에서의 탄소저감을 위한 노력은 아직도 피상적이다. 솔직히 우리 사회 주변에는 먹고살기도 바쁜데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구태여 걱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있다. 그러나 환경문제 만큼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최대의 당면과제다. 차일피일미루다가는 어느순간 대재앙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 기후온난화에 따른 이상기온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가을, 시월의 마지막 밤이 정말로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