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아뿔싸~ 속았다. 감사원이 공개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채용 비리 실태는 그야말로 상상초월이다. '세자 채용' 문구까지 등장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충격적이다.
*** 60년 무감사 결과는 비리
선거관리위원회의 비리와 규정 위반은 심각했다. 감사 대상은 2013년 이후 10년간 진행된 선관위의 291차례 경력직 채용 과정이었다. 직원 자녀들이 특혜와 조작으로 채용됐다. 어떤 사무총장의 아들은 내부에서 '세자'로 불리기도 했다. 감사원이 검찰에 넘긴 선관위 전·현직 직원만 49명이다.
비리의 공간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전국의 선관위가 포함된다. 어느 선관위는 감사 직전 관련 문서를 변조했다. 어느 선관위는 증거 서류를 파기했다.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버틴 사실도 드러났다. 어떤 간부는 인사비리 자료가 담긴 노트북 내용을 삭제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상상할 수 없는 비리 사실 은폐가 벌어졌다. 어쩌면 은폐가 채용 비리보다 심각했다.
충북선관위에서도 자녀 채용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감사원이 감사를 벌인 결과 비리가 심각했다. 먼저 전 사무처장의 자녀 특혜채용을 위해 채용공고를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자녀만을 위한 '비(非)다수인경쟁채용'을 열었다. 면접시험 등엔 내부위원만 참여했다. 전 사무처장의 영향력 행사 때문이다. 국회 제출 답변서도 허위로 확인됐다. 자기들끼리 짜고 친 판이나 다름없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다. 헌법에 의해 설치됐다. 법률에 따라 독자적 권한을 부여받는다.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리까지 용납되는 건 아니다. 헌법적 지위를 내부 비리 은폐 수단으로 악용하는 건 최악이다. 용납할 수 없다. 선관위는 그동안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거부했다. 선거 사무는 일반 행정과 구분된다는 게 주장의 근거였다. 근데 구분된 건 비리였다.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다. 선관위가 비리의 온상처럼 비쳐졌다. 결국 마지못해 채용 비리에 한해 감사원의 감사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제한 감사에서조차 800여건의 규정 위반이 밝혀졌다. 심지어 은폐에 나선 사실까지 드러났다. 위부터 아래까지 한통속이 됐다. 선관위가 조직범죄 집단이 돼 버렸다. 헌법상 독립기구가 무색해졌다. 60여 년간 감사원 직무감찰을 받지 않은 결과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 꽃을 다루는 기관이 선관위다.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라는 선거 4원칙을 확립하는 헌법기관이다. 그런데 감사원이 공개한 선관위 감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선관위가 과연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가 의심케 한다. 특히 선관위 사무총장과 사무처장 등 고위직이 국민의 분노 지수를 끌어올렸다.
*** 지금이라도 환골탈태해야
지금도 늦지 않았다. 헌법적 책무에 충실할 수 있다. 선관위의 자체 개혁이 정답이다. 헌법기관이라는 허울 좋은 말 뒤에 숨어서 될 일이 아니다. 잘못을 바로잡아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상황을 직시하고 대국민 자정계획부터 내놓아야 한다. 그런 다음 감사원의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선관위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헌법이 보장한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서다. 그런데 선관위는 설립 60여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감시 사각지대에서 자기들끼리 짬짬이 특혜를 주고받았다. 이른바 신의 직장인 셈이었다. 환골탈태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