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덕노인복지관에서 급식봉사를 마친 뒤 식판을 닦고 있던 윤호래씨가 사진을 촬영하자는 요청에 쑥쓰럽게 웃고 있다.
윤 씨는 자신보다 봉사대원들이 더 고생한다며 추켜세운다. 남을 돕고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인 겸손함이 윤 씨에게도 짙게 배어 있었다.
"평생 넉넉하게 살아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나 정도면 행복한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뒤로 봉사활동을 하게 됐죠"
윤 씨는 1988년 내덕2동자원봉사대를 통해 나눔을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20여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사랑의 손길을 건네 왔다.
복지관 급식봉사부터 고아원 방문, 환경정화 활동, 경로당 청소, 경로잔치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윤 씨가 항상 있었다.
특히, 내덕2동 일대의 독거노인 중 윤 씨의 도움을 받지 않은 세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식이 떨어지면 밑반찬을 해다 줬고, 겨울철이 되면 김장김치를 담다가 줬다. 외로움을 더 느끼는 명절에는 말벗이 되어 줬고, 틈틈이 모은 돈으로 효도관광도 보내줬다.
"노인들은 작은 베풂에도 참 고마워해요.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죠"
봉사활동은 위한 기금은 헌 옷 알뜰매장을 운영해 마련한다. 불경기임에도 꾸준히 찾아주는 시민들이 윤 씨는 늘 고맙기만 하다.
봉사활동을 다니다 보면 가슴 아픈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암 말기 환자를 돌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만난 환자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고맙다며 손을 꼭 잡아줬어요. 그 때 결심했죠. 이 사람 몫까지 나누며 살아야겠다고…"
윤 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계속 할 생각이다. 봉사를 위해 태어나, 봉사를 하며 살다가, 봉사를 하다 죽는 것이 윤 씨의 꿈이다.
윤 씨는 인터뷰가 끝나기도 전 신발을 고쳐 신는다. 가볼 데가 있단다.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야하느냐고 물었더니 윤 씨가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요양원에 경로잔치 열어주러 가요. 내가 이래봬도 거기선 스타라니깐"
노년이 더 아름다운 윤 씨의 발걸음이 행복하다.
/ 임장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