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일보] 호모 노마드(Homo nomad), 유목민이다. 길 위의 존재다. 길 위에서 길을 묻고 결국 홀로 걷는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이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계속 길을 간다.
*** 카자흐에서 키르기스까지
매일 밤 마음속으로 상상 여행을 한다. 상상만으로도 몸이 달아 견디기 어렵다.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한다. 비행기를 타고 버스 타고 말도 타고 간다. 흙냄새 가득한 길을 걷는다. 초원에서 말이 숨 쉬는 소리까지 듣는다. 마침내 내게 묻는다. 왜 떠나려 하는가. 왜 걸으려 하는가. 답은 늘 같다. 걸으면서 세상을 향해 나가기 위함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배낭을 꾸린다. 카자흐스탄을 거쳐 키르기스스탄으로 무작정 떠난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올라온다. 떠나기 전과 떠나고 나서 느낌이 아주 다르다. 가기 전과 가고 난 뒤의 감정이 사뭇 다르다. 가기 전 느낌은 이랬다. 느낌1-가고 싶다 한 번쯤. 느낌2-가고 싶다 죽기 전에. 느낌3-짜릿한 상상. 가고나선 달랐다. 느낌1-오고 싶다 또 한 번. 느낌2-낯선 떨림 다시 또. 느낌3-아름다운 자연. 한 마디로 감동이다.
지난 11일부터 19일까지 카자흐스탄을 거쳐 키르기스스탄을 다녀왔다. 새로운 여행을 즐겼다. 카자흐스탄은 비행기로 6시간 거리의 가까운 나라다. 하지만 마주치는 풍경은 온통 낯설고 신비했다. 천산산맥이 내놓은 비경은 놀라웠다. 상상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맛보고 느꼈다. '아시아의 알프스' 같은 수식어가 괜한 게 아니었다. 실크로드 도시의 유적은 여전히 찬란하게 빛났다. 협곡과 호수가 어우러진 경관은 아름다웠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린다. 가는 곳마다 알프스와 안데스를 합친 풍경을 선물한다. 이식쿨은 해발 1천600m 산중 호수다. 따뜻한 호수란 의미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산정호수다. 호수 주위를 4천~5천m 설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호수 전체에 걸쳐 독특한 기후가 형성돼 있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산허리에 걸친 구름 띠가 마치 산수화처럼 몽환적이다. 호수 주변에 깔끔한 서양식 리조트도 있다.
송쿨호수도 빼놓을 수 없다. 이식쿨에 이어 키르기스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키르기스스탄 나른주 북부에 있다. 해발 3천16m, 길이 29㎞, 폭은 약 18㎞에 이른다. 몰도산맥이 호수를 에워싼다. 송콜호수가 만년설을 배경으로 바다처럼 파랗게 펼쳐진다. 설산과 풀 뜯는 말도 볼 수 있다. 호수정원 유르트에서 하루 묵을 수도 있다. 날씨는 덥지 않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 좋다. 곳곳에서 야생화를 볼 수 있어 낭만적이다.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이나 모두 아름답다. 걷기 여행을 하기에도 제격이다. 하지만 여행으로 보고 체험하는 건 아주 일부다. 여기에 여행자의 주관적인 생각까지 개입한다. 누군가의 여행담이나 여행기를 전부인양 받아들였다간 자칫 낭패 보기 쉽다. 잘못된 정보를 입력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나라를 한두 마디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짧은 시간 여행으로 할 수도 없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여행자는 대부분 제한된 시간에 여행을 마쳐야 한다. 그 시간 여행자 눈에 비친 강한 첫인상을 기록하기 마련이다. 첫 느낌들을 눈여겨 들어보는 게 기본이다. 그 첫 느낌과 인상이 바로 여행자에게 비친 그 나라의 얼굴이 된다. 내가 본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첫 느낌은 강렬하다. 카자흐스탄의 차른 계곡은 붉은 사막이었다. 카자흐스탄의 이식쿨은 호수의 나라였다. 두 나라 모두 초원의 나라, 유목민의 나라, 별의 나라였다.
*** 결국은 나를 위한 여행이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생각한다. 처음에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한다. 왜 걷는가. 왜 떠나는가. 끝은 어딘가. 과연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는가. 하지만 여행의 기착지는 언제나 자신이다. 어디로 가든 내가 나섰던 바로 그 장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영원한 이탈이나 가없는 은둔이 아닌 한 늘 그렇다. 결국 나를 위한 여행이다.
아름다운 길에 족적을 남긴 인연들과 자연풍경에 대해 써보려 한다. 고즈넉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식쿨과 송쿨 호수를 떠올린다. 하얀 아라쿨도 눈앞으로 소환한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만큼만 존재 한다." 이 말의 의미를 음미하면서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려 한다. 세 번이 될지 네 번이 될지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