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 물속의 성

2020.09.02 19:20:46

물속의 성

                     이현복 충북시인협회



하교 길에 우리는 미역을 감으며 놀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을 옮기며 물속에 성을 쌓았다 물속에서는 돌도 가벼웠다 동쪽에 쌓았다가 서쪽으로 옮겼고 남쪽에 쌓았다가 북쪽으로 옮겼다 돌들에게 햇살을 한 번씩 보여주는 것이 물속의 규칙이었다

물속에서는 못할 일이 없었다 교실을 지어놓으면 송사리 미꾸라지 퉁가리 꺾지가 숨어들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미끄덩거리며 빠져나갔다 햇살이 어룽거리는 사이로 우리는 더 큰 돌을 옮겨보았다 종래는 바위를 옮겼다 그러나 그건 물속의 일이었다

물뱀이 지나가면 물속으로 들어가 숨을 참았다 뱀이 수면을 가르며 머리 위를 지나가는 동안 눈을 뜨고 숨을 참았다 그 여름이 고기 눈처럼 커지고 있었다

장마가 지나가면 물속의 집들은 어디론가 떠내려갔다 깔깔거리며 우리는 다시 집을 지었지만 물속의 그 집 이야기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 때 새매 한마리가 뱀을 물고 날아가고 있었다 머리위로 떨어질 듯 떨어질 듯 했으나 새매는 커다란 날개를 무겁게 휘적대며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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