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단상(斷想)

2018.11.08 17:47:05

[충북일보] 최근 KTX 세종역 신설 논란에 더해진 호남선 KTX 직선화 문제가 시끄럽다. 마른 검불에 불이 붙듯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지켜보며 어느 한 부자(父子)가 떠올랐다.

국회를 출입하게 되면서 나는 서울과 청주를 오가며 출퇴근하고 있다. 어느 날 용산역에서 오송역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다 난 한 부자를 목격했다.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한 중년 남성은 아버지로 보이는 한 노인에게 숫자가 적힌 약을 가리키며 아침에 일어나서 1번을 시작으로 자기 전 7번까지 총 7번이나 먹어야 하는 약 복용법을 설명했다.

열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귀마저 어두운 노인이 귀찮아하자 중년 남성은 짜증을 내더니 결국에는 언성을 높였다. 약봉지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중년 남성은 설명의 또 이어졌다.

부자에게 시선을 떼고 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내려왔다. 얼마 후 그 중년남성은 노인과 함께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때까지 중년남성은 약 복용법을 계속 설명하고 있었다.

노인은 바쁜데 얼른 들어가라며 중년 남성을 돌아 세우려 했다. 하지만 결국 중년 남성을 열차 안까지 들어와 노인이 앉을 좌석까지 안내했다.

그리고 열차가 떠날 때까지 창밖에서 노인을 걱정스럽게 지켜봤다. 세종역이나 호남선 직선화 문제를 거론하며 이 같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냥 생각나서다.

노인의 목적지는 아마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은 없을 것이고 큰 병원이 운영될 수 없는 조그마한 소도시나 농촌도시일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초짜 정치부 기자에게 묻는다면, 몇 달 여의도에서 보고 배운 대로 노인의 집 앞에 KTX역을 설치해 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선로를 직선화해 서울까지 오는 시간을 줄여달라고 해야 할까.

노인은 한두 달 치 약을 타기 위해 서울에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KTX를 타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종역과 호남선 직선화 논란에 대해 이시종 충북지사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부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쉬운 대로 우리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첨예한 이해관계, 국가균형발전과 지역발전에 대한 열망은 저울에 달거나 자로 재지 않아도 똑같다.

행정편의상 그어놓은 선(線)이 집단지성의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다.

산업화시대 수도권 중심의 개발정책을 세웠던 기성세대들은 이제 세종시를 제2의 서울로 만들려 하고 있다.

나는 다만 용산역에서 만난 노인이 서울에 오지 않고 집 근처 병원에서 서울 대형병원에 준하는 의료서비스를 받길 바랄 뿐이다. 그게 정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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