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의 추억

2018.01.17 13:51:23

신동학

충북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한밤 중만 되면 겨우내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마실 다녀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집집마다 개들이 짖어 대서다. 개 짖는 소리만 듣고도 어느 집 앞을 지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둘째 동생이 태어나던 해 가을 아버지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그해 봄에 태어났다는데 검은색 몸통에 머리와 다리 일부분이 흰색인 수컷으로 진돗개와 흡사했다.

그 강아지는 묶어 놓지도 않고 개집도 없이 밖에서 컸다. 여름에는 마루 밑에서 자고 겨울에는 할머니가 마련해준 헛간의 짚더미나 나뭇간의 마른 잎을 덮고 잤다. 워낙 시골이라 사람도 변변한 목욕을 못하던 시절이라 개를 목욕시킨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그저 머리나 등을 쓰다듬어주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잘 컸다. 둘째 동생과는 유난히 친했다. 동갑내기로 같이 자라면서 어떤 유대감이 형성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는 이 개를 유난히 아꼈다. 끼니때가 되면 늘 함께 챙기고 겨울에는 헛간이나 나뭇간에 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인지 그 개는 우리 집의 든든한 지킴이었다. 외부인은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맹렬히 짖어대며 달려들었지만 10명이 넘는 식구들의 발자국 소리는 용케 알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왔다. 상이군인이라면서 의수를 끼고 물건을 팔러 다니던 이들도 우리 집에는 들어오길 꺼려할 정도였다.

그 개 이름은 '워리'였다. 사실 우리 동네 개들도 대부분 워리였다. 워리는 동네에서 영물이라고 소문이 났었다. 집집마다 개를 길렀는데 3년을 넘기기 어려웠다. 들끓는 쥐 때문에 식량이 축난다고 쥐잡기 운동을 벌일 때라 쥐약 때문에 죽은 쥐를 먹고 죽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용케 살아난 개도 여름만 되면 동네 어른들의 보신용이 되기 일쑤여서다.

그런데 워리는 죽은 쥐는 먹지 않았다. 더구나 자기가 잡은 쥐도 꼬리만 잘라 먹고 내팽개치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뿐이 아니다. 집을 나가 한두 달 동안 들어오지 않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곤 했다. 처음에는 걱정을 했지만 몇 번 되풀이 되자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어느 날 나타난 워리를 보고 동네사람들은 어디 가서 수캐질 하고 왔다고들 하면서 영물은 영물이라고들 했다.

그러던 워리가 목덜미 아래쪽에 혹 같은 것이 점점 커지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동물병원이란 게 있는지도 몰랐던 시절이니 그저 안타깝게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둘째는 학교에서 오자마자 워리부터 찾았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 우리 곁을 떠났다. 둘째가 중학교 들어가던 해였으니 우리 집에서 13년여를 산 셈이니 개로서는 천수를 누렸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워리가 죽자 할머니와 동생은 밤중에 아무도 몰래 뒷산 어딘가에 묻었다. 혹여나 동네 사람이 어찌할까봐서다.

요즘은 아픈 김이 보이면 득달같이 병원에 데려가고, 철따라 옷 바꿔 입혀주고, 목욕, 미용, 예방주사에 스케일링까지 해주는 세상이다.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통학차량을 이용해 강아지 유치원도 보낸다니 그 끝이 어디일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개띠 해다. 새해가 되면서 죽은 지 40년도 더 지난 워리가 가끔 떠오른다. 요즘 우리 집에 왔다면 더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도 한다. 아무리 시대가 이래도 개보다는 사람이 먼저란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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