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곽씨의 새재 과거길과 선문제도

2016.03.29 15:23:40

조혁연대기자

국립대구박물관은 지난 2011년 6월 '편지로 읽은 일상'이라는 기획전을 개최했고, 그 주인공은 조선 선조대의 곽주(郭澍) 부부였다. 지난 1989년 경북 달성군 현풍리에 거주하는 곽병주 씨가 같은 군의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12대 조묘 진주하씨 묘를 이장하여 위해 봉분을 열었다. 진주하씨는 곽주의 부인이다.

놀랍게도 관속에서는 고인의 미이라와 의복, 그리고 한글편지[언간] 150매 등이 잘 보존된 상태로 발견됐다. 작성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전기에 쓰여진 것이 가장 많았다.

언간 속의 곽주는 입신양명을 위해 절간으로 들어가 과거를 준비하였다. 나이를 먹도로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는지 어린 아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 그는 절간을 나올 때 신세를 진 스님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가 열이렛날로 내려 갈 것이니 내가 탈 말 두필하고 아이가 탈 말을 열이렛날 자우 일찍 올리어 보내소. 종들이 말을 몰아 올 때, 맑은 술 두 병하고 나무 안주 한 당새기를 장만해 보내소. 절의 중들이 나를 후히 대접하였으니 나도 갈 때 저희들에게 술이나 먹이고 가려 하네.'-<곽씨언간 17>

그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상경길에 나섰다. 한글편지 가운데 '경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시기는 1610년 쯤으로 추정된다. 그는 경상도 현풍집을 나서 김천을 경유한 끝에 상주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상주를 떠날 쯤 부인 하씨에게 다시 안부를 전했다.

'요사이 아기들 데리고 어찌 계신가. 기별을 몰라 걱정하네. 나는 오늘에야 상주를 떠나네. 상소하는 일이 서울데 가도 쉽게 이루어지 않으면 과거는 못 볼 양으로 가네. 양식이 부족하여 쌀을 길되로 서 말 아홉 되를 꾸어가네. (중략) 화분들은 내 방 창밖의 마루에 얹어서 서리 맞게 하지 마소. 바빠서 이만. 구월 초나흗날.'-<곽씨언간 10>

조선시대 여행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곽주는 실외의 화분을 걱정할 정도로 다정다감했다. 상주에서 상경을 하려면 보은-청주-천안과 문경-조령-충주 등의 여로를 택할 수 있다. 그는 후자를 택했다. 그는 같은 해 9월 19일에서야 백두대간 새재를 넘었다. 그리고 아내 앞으로 다시 편지를 썼다.

'나는 어제서야 새재를 넘어 왔으니 스무나흗 날 사이에 셔울에 들어갈 것이로세. 과거 시험 날을 연기하여 진사시는 시월 스무나흗날이고 생원시는 시월 스무엿샛날이라 하네. 구월 스므날.-<곽씨언간 12>

여행에는 변수가 뒤따르기 마련으로, 그는 당초 계획보다 하루 늦은 스무닷새날 서울에 도착했다.

'나는 그제야 셔울 드러오니 과거날 물려 시월 스므나흔날로 한다 하니 생원시는 스므엿새날이니 결국 보고서 갈 것이니 동짓달 열흘께 집에 갈까 싶어. 구월 스므닐웬날'-<곽씨언간 14>

9월 27일의 그제는 9월 25일로, 그의 백두대간 새재~서울의 여정은 6일이 소요됐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누가 이 편지를 현풍의 본가에 전해줬느냐는 점이다. 선문(先文)제도라는 것이 있다. 주인집 양반이 편지를 써서 수행하던 종에게 주면 그 노비는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달려 본가에 전달했다.

이 때문에 내외 서로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또는 '언제 귀가할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노비는 주인집의 발노릇까지 해야 했다.

현풍곽씨 언간.

조선시대 여행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곽주는 실외의 화분을 걱정할 정도로 다정다감했다. 상주에서 상경을 하려면 보은-청주-천안과 문경-조령-충주 등의 여로를 택할 수 있다. 그는 후자를 택했다. 그는 같은 해 9월 19일에서야 백두대간 새재를 넘었다. 그리고 아내 앞으로 다시 편지를 썼다.

'나는 어제서야 새재를 넘어 왔으니 스무나흗 날 사이에 셔울에 들어갈 것이로세. 과거 시험 날을 연기하여 진사시는 시월 스무나흗날이고 생원시는 시월 스무엿샛날이라 하네. 구월 스므날.-<곽씨언간 12>

여행에는 변수가 뒤따르기 마련으로, 그는 당초 계획보다 하루 늦은 스무닷새날 서울에 도착했다.

'나는 그제야 셔울 드러오니 과거날 물려 시월 스므나흔날로 한다 하니 생원시는 스므엿새날이니 결국 보고서 갈 것이니 동짓달 열흘께 집에 갈까 싶어. 구월 스므닐웬날'-<곽씨언간 14>

9월 27일의 그제는 9월 25일로, 그의 백두대간 새재~서울의 여정은 6일이 소요됐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누가 이 편지를 현풍의 본가에 전해줬느냐는 점이다. 선문(先文)제도라는 것이 있다. 주인집 양반이 편지를 써서 수행하던 종에게 주면 그 노비는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달려 본가에 전달했다.

이 때문에 내외 서로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또는 '언제 귀가할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노비는 주인집의 발노릇까지 해야 했다.

/ 충북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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