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의 본래 이름은 '길상사(吉祥寺)'

2015.12.01 15:40:22

조혁연 객원 대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산하에는 25개 교구가 존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속리산 법주사(法住寺)는 제 5교구 본사로, 도내에만 60여개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종갓집격인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고, 776년(혜공왕 12)에 진표(眞表)가 중창했다.

법주사의 법주는 '법이 머무른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 이는 창건 설화와 관련이 깊다. 창건주 신라의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고, 따라서 '법주사'라는 사찰명을 지니게 된 것으로 구전된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설화로, 사찰명 '법주사'가 역사 기록에 집중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 이다. 법주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철기(鐵器)에는 '統和二十四年歲次 / 丙午正月▨▨成幢 / 棟法▨▨▨▨▨▨'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해석하면 '통화(統和) 24년째 되던 해인 병오년 정월 일에 당(幢)을 주조하여 만들었다. 동량(棟樑)은 법▨(法▨)이다. ▨▨▨▨.' 정도가 된다. 명문 '法▨' 가운데 뒷글자가 마모돼 있어 '住' 자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나 전문가들은 '住'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통화 24년째의 병오년은 고려 목종 9년(1006)에 해당한다.

법주사 경내에는 고려 충숙왕 3년(1342)에 건립된 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가 위치한다. 이 비의 전액(篆額)에는 '高麗國俗離山法住寺慈淨國尊碑銘幷序'(고려국속리산법주사자정국존비명) 명문이 새겨져 있다. 전액은 전자체로 쓴 비석이나 현판의 제목 글씨를 말한다.

따라서 최소한 고려 후기에는 '법주사'라는 이름이 대중적으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법주사는 삼국시대에는 '길상사(吉祥寺)'로 불려졌다. 익히 알다시피 고려 승려인 일연(一然:1206∼89)은 신라·고구려·백제의 남겨진 이야기를 모아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지었다.

'속리(산)·길상초·길상(사)' 등의 표현이 보인다. 《삼국유사》 권 제4.

이 역사서는 원나라 치하에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고조선을 서술하는 등 민족의식이 강하고 불교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법주사 중건주인 진표스님은 지금의 김제 금산사를 창건한 후에 속리산에 들였다가 식물 길상초(吉祥草)가 자라는 곳을 보고 사찰을 지을 터로 점찍었다.

진표는 그 후 7년뒤 제자인 영심 등에게 그 곳에 사찰을 건립하도록 하였고, 사찰의 이름을 '길상사'(吉祥寺)라고 하였다.

'내가 이미 너희들에게 주었으니, 이것을 가지고 속리산에 가라. 산에는 길상초가 나는 곳이 있으니 여기에다가 정사를 창립하고 이 교법에 의거하여 널리 인천을 헤아려 후세에 유포하라." 하였다. 이에 영심 등이 가르침을 받들고 곧장 속리산에 가서, 곧 길상초가 나는 곳에 사찰을 건립하였으니, 이름이 길상사이다.'-<삼국유사 권 제4, 관동풍악발연수석기>

원문은 '我已付囑汝等, 持此還歸俗離山, 山有吉祥草生處, 於此創立精舍, 依此敎法, 廣度人天, 流布後世. 永深等奉敎, 直往俗離, 尋吉祥草生處, 創寺名曰吉祥(아이부촉여등 지차환귀속리산 산유길상초생처 어차창입정사 의차교법 광도인천 유포후세 영심등봉교 직왕속리 심길상초생처 창사명왕길상'이다.

백합과 여러해살이풀인 길상초(학명 Desmostachya)는 나무 그늘에서 잘 자라며 연한 자주색 꽃을 여름~가을에 피운다. 속리산에 길상초 군락지가 지금도 존재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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