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의 지시로 땅을 파 유골을 묻었어요"

어느 40대 굴착기 기사의 양심선언

2013.03.05 20:03:10

굴착기 기사 박성수씨가 건설사의 지시로 유골을 파묻었다고 지목한 곳.

박씨는 건설사가 주인 없는 유골을 묻어 놓은 뒤 마치 묘지를 훼손하지 않은 것처럼 표시해 놓았다고 밝혔다.

"그 날 이후 매일 밤 가위에 눌리고,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말 미치겠습니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싶습니다."

충북 진천의 한 산업단지 조성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40대 굴착기 기사가 시공사의 지시로 '유골'을 파묻었다고 폭로했다.

이 굴착기 기사의 폭로내용을 종합해 보면 진천지역 한 산업단지 조성 현장 하청업체 J사는 공사 도중 묘지를 불법 훼손해 찾을 수 없게 되자 인근 무연고묘 유골을 파내와 늦은 밤 자신에게 지시, 유골을 땅 속에 파묻은 뒤 잃어버린 묘지를 찾은 것처럼 위장해 놓았다는 것.

충북 진천의 한 산업단지 조성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40대 굴착기 기사 박성수씨(가명·47)가 이 현장 하청업체 J사가 공사 도중 묘지를 불법 훼손해 찾을 수 없게 되자 인근 무연고묘 유골을 파내와 자신에게 지시해 유골을 땅 속에 파묻은 뒤 잃어버린 묘지를 찾은 것처럼 위장해 놓았다고 폭로하고 있다.

ⓒ김태훈기자
굴착기 기사 박성수씨(가명·47)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날의 사건을 정리해 봤다.

지난 1월3일 오후 6시께 박씨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진천의 한 산업단지 공사 하청업체 현장 소장인 K씨였다.

현장소장 K씨는 다짜고짜 박씨에게 "원청업체 모르게 둘이서 할 일이 있다"면서 무조건 현장으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현장소장은 "묻지 말라"고 잘라 말했다.

박씨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6시30분께.

겨울이라 날은 어두워 캄캄했다.

현장에는 하청업체 소속 현장 감독관인 O씨와 C씨가 나와 있었다.

O씨와 C씨는 박씨에게 무조건 땅을 파라고 지시했다.

그러더니 O씨가 자신의 자동차에서 '길쭉하고 하얀색 종이 뭉치(지름 60~70cm)'를 들고 왔다.

O씨와 C씨는 하얀색 종이 뭉치에서 길쭉한 '나무막대 같은(?)' 조각 대 여섯 개를 꺼내 박씨가 파 놓은 땅 속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그것은 바로 '유골' 이었다.

깜짝 놀란 박씨는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O씨와 C씨는 아무말 말고 흙으로 덮으라고 지시했다.

이들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박씨는 흙으로 유골을 덮은 뒤 "솔직히 얘기해 달라. 아니면 군청에 신고 하겠다"고 화를 냈다.

그제서야 O씨는 "공사현장에 있는 무연고묘의 뼈(유골)인데, 화장터로 가기 전에 몰래 가지고 왔다"며 "공사도중 불도저가 밀어붙여 잃어버린 묘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 그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사 도중 묘지를 불법 훼손해 찾을 수 없게 되자 인근 무연고묘 유골을 파내와 그 유골을 땅 속에 묻어 놓은 뒤 마치 잃어버린 묘를 찾은 것처럼 위장해 놓은 것이다.

박씨는 O씨와 C씨에게 "소장이나 원청업체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소장한테 얘기를 듣지 않았느냐. 믿을만한 사람이 당신밖에 없다"며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입조심을 당부했다.

이 후 이들은 그 곳에 묘가 있다는 표시를 해 놓았다.

7시40분께, 양심에 찔렸는지 현장에 남아 유골이 묻힌 흙 위에 '막걸리'를 뿌리고 있는 감독관 O씨와 C씨의 모습을 뒤로한 채 박씨는 찝찝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박씨의 고통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 날 밤부터 박씨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무속인에게까지 찾아갔다.

박씨는 "악몽도 악몽이지만, 조상을 모시고 자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정말 찝찝해 미칠지경"이라며 "앞으로 수사당국의 수사에도 적극 협조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이호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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