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죽만 울린 부시 대통령의 중동순방길

가는 곳마다 이란 위협만 강조

2008.01.16 22:49:58

9일 이스라엘에서 시작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중동 6개국 순방이 16일 이집트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내년 1월로 임기가 끝나는 만큼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번 부시 대통령의 중동 순방길은 `이란, 석유, 미국식 평화 설계안 재확인'으로 요약할 수 있지만 `외화 내빈'이었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부시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앞두고 `오비이락'격으로 6일 이란 해군 순찰 보트와 미 해군 군함의 대치 사건이 벌어졌고 미국 정부는 이에 대해 `도발적인 위협'이라며 과민 반응을 보였다.

이날 양측 해군의 조우가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미국 정부의 이런 대응은 곧 이어질 부시 대통령의 중동 순방의 색깔을 충분히 짐작케 했다.

첫 방문지인 이스라엘에서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를 만나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미국의 `가이드'를 받은 평화협상을 타결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하지만 이런 마감 시한을 설정한 부시 대통령의 압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내분을 겪고 있는 탓에 평화 협상을 책임지고 추진할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불리한 국면에서 대선을 치러야 하는 그의 `조급증'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이집트 일간 알-아흐람의 칼럼니스트인 살라마 아흐메드 살라마는 "어리석은 학생이 시험 전날 밤에 벼락치기 공부를 하려는 것과 같다"며 부시 대통령의 이번 중동 방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 이어진 쿠웨이트ㆍ바레인 방문은 중동 국가와 정상 외교라기 보다는 이 지역에 주둔한 미군 기지를 방문해 자국군의 사기를 진작하려는 `치하 방문'에 가까웠다.

미군 기지에서 뿐 아니라 들르는 곳마다 부시 대통령은 `이란은 테러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이란은 중동의 위협이다'는 내용의 연설을 빼먹지 않았다.

이란과 지정학적ㆍ경제적으로 엮인 걸프지역 국가를 돌며 미국의 이란 고립 작전에 대한 협력을 방문국 정상에게 다짐받고 `미국편에 서지 않으면 이란편'이라는 미국의 이분법적 구도를 재확인했던 셈이다.

하지만 걸프 국가와 이란은 미국이 원하는 것처럼 칼로 자르듯 깨끗이 등을 돌릴 수 없는 관계다.

이란이 시아파 국가이긴 하지만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유대로 묶인 데다 이란과 미국의 군사적 위기는 곧바로 걸프 국가의 정세와 경제에 직격탄이라는 점에서 이란을 적으로 돌려세울 수 없는 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이 지역 정부의 입장이다.

부시 정권에 대한 중동의 `민심'은 그리 곱지 않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반미 시위와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UAE 두바이 방문 뒤 현지 언론은 부시 대통령 방문으로 도시 기능이 `올 스톱'돼 1억 달러 이상의 경제 손실이 났다는 비난 여론을 이례적으로 부각했다.

UAE 현지신문 걸프뉴스는 14일 "부시 대통령은 매우 오래되고, 오래된 이야기를 했다"며 "그는 중동의 민주주의와 자유, 정의를 간단히 반복하기만 했지 별다른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항상 하던 말을 반복한 부시 대통령에 대한 중동 여론의 피로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신문은 "가장 큰 실패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협상을 논할 때 구체적인 정책이나 전망, 결심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부시 대통령은 이 협상을 둘러싼 아랍 세계의 오랜 입장과 이스라엘과 친선회복을 무시하고 그저 양자 간 평화관계부터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드는 고유가를 진정하려는 것도 이번 중동 정상외교의 `포인트'였다.

그는 14∼15일 사우디 아라비아 방문 간 압둘라 사우디 국왕에게 고유가에 대한 우려와 이에 따른 미국 경제 침체 가능성을 언급했다.

결국 최대 원유생산국인 사우디가 앞장 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원유 공급량을 늘려 원유가를 내리라는 압력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인데 사우디의 사후 대처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압둘라 알-바드리 OPEC 사무총장은 16일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당면한 고유가는 원유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두자"며 불편한 기색을 나타냈다.

진부했다는 평가를 받은 부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일정과 같은 기간 사우디ㆍ카타르ㆍUAE를 방문, `핵 세일즈'를 벌인 니코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중동 순방은 크게 대비됐다.

원자력 기술의 선진국인 프랑스는 `포스트 석유에너지'를 찾고 있는 이들 걸프지역 산유 부국을 재빨리 방문, 원자력 기술 이전과 발전소 건설 협력이라는 실익을 챙겼다.

프랑스는 이란과 달리 미국의 `관리하'에서 핵 기술 개발은 민간 목적이므로 용인하겠다는 미국의 이중 잣대를 절묘하게 이용한 셈이 됐다.


기사제공:연합뉴스(http://www.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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