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돈모아 고향선 대부분 중산층

2007.07.03 08:41:30

국내 이주 외국인들이 고향에서는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 가. 지난 5월 15일부터 25일까지 필리핀과 베트남을 찾아 현재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가정을 방문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살던 고향집은 대부분은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했다. 다만 이들이 한국행을 원한 것은 보다 나은 일자리 창출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다. 여성들의 경우 ‘모계사회’의 영향으로 여성들이 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현지의 열악한 임금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등에서 벗어나 그래도 살기좋은 ‘한국행’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필리핀과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노동자와 귀국한 노동자의 삶을 알아본다.
/ 편집자 주




사례 1. 이주노동 희망

해외 이주노동자로 나간다는 것은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꿈인 동시에 현실이다.
현재 한국에서 키보드 연주를 하고 있는 레드마키노(23)씨 가족은 아버지는 예전에 한국인 이 운영하는 원양어선을 탔고 현재는 방범대로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고 어머니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키보드 경력 6년을 가지고 있는 레트마키노씨는 현재 한국에서 월 120만원을 받고 있다. 이중 일정액은 한국에서 송금을 해 가족들이 관리하고 있다. 아버지 안퀴노(56)씨는 “아들이 문제가 없는 한 한국에서 계속생활하고 있다”며 “현재인터넷과 전화 등으로 아들을 매일 보고 있거나 통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은 현재 한국에서 여자친구를 사귀어 재미있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크마키노씨의 고향은 수도 마닐라에서 차량으로 동쪽으로 약 3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사례 2. 한국인과 결혼

필리핀 인 엘리사 바욧(25)씨는 지난 2006년 4월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39)과 결혼을 해 현재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바욧씨가 한국인과 결혼을 위해서 만난 것은 겨우 5시간 정도 맞선을 본 것이 전부다.
“처음에는 딸이 외국인과 결혼한다는 것에 대해 서먹서먹 했으나 지금은 자랑스럽다”며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한국에서 결혼해 산다는 것이 처음에는 두려웠으나 지금은 잘 살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보기좋다”고 어머니 리오리안(58)씨는 말한다.
어머니 리오리안씨는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 사위가 매월 일정액을 지원해줘 이곳에서는 한국인 사위를 얻어 부자가 되겠다고 주위에서 말하고 있다”며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마닐라의 알리모리 백화점에서 20여년간 근무하면서 딸 둘은 대학까지 졸업시킨 어머니가 자랑스럽다고 바욧씨의 동생 리지(23)씨는 말한다.
리지씨는 “현재 언니와 인터넷에서 화상통화로 1주일에 1회정도 만나고 있다”며 “이곳에서는 여성들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미덕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사례 3. 한국행 이후 생활

베트남인 쿡(33)씨는 지난 1997년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을 해 신탄진에서 근무를 하다 2005년도에 불법체류자로 체포돼 강제추방됐다.
한국에서 벌어온 돈으로 현재 집과 PC방을 운영하고 있다. 혼자 한글을 익혀 한국의 기숙사에서 근무하던 언니들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매월 80만원씩 받았으나 마지막 달에 공장의 사장이 50만원밖에 급여를 주지않아 2000년 2월 수원으로 옮겼다. 반지하방에서 생활하면서 고생도 무척 많이 했다.
쿡씨는 “한국에서 가장 가고싶은 곳이 제주도”라며 “한국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했다. 그때를 생각하며 베트남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1997년 당시 한국으로 출국할 때 비용이 300만원으로 어머니가 비용을 대주었다.
지금은 PC 방과 집을 세주어 베트남 돈으로 월 300만동의 수입(1달러 1만5천동)을 벌어들이고 있다.
사례 4. 여성 해외결혼 증가

드핑담(26)씨는 인천에서 우편배달부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의 베트남 부인이다. 2005년 12월 결혼해 현재 화목하게 살고 있다. 언니도 전기수리공인 한국인과 결혼해 현재 잘 살고 있다.
아버지 썬(59)씨는 “딸들의 사는 모습이 보고 싶으나 한국에 가려면 많은 비행기 요금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며 “지난 3월 딸들이 다녀가 다행이다”고 말했다.
썬씨는 “베트남에서는 자녀들을 중학교 까지만 교육을 시키고 부모의 일을 도와주고 있고 농촌지역은 대부분 한동네에서 결혼하고 있다”며 “여성들의 경우 일자리가 없어 해외로 시집을 간후 공장에서 일해 집으로 돈을 보내주는 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결혼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반대”라며 “딸들이 해외로 시집을 가서 돈을 보내주는 데에는 그만큼의 노력과 시집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해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사례 5. 이주 노동자 가족 생활

베트남 여인 중(24·DUNG)씨는 약혼을 한 남편인 잡(24)씨가 현재 한국의 대전에 있는 주물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중씨는 “지난해 남편이 한국에 갈 때 무척 슬퍼했다”며 “한동네에서 같이 자라다 직장도 같이 다니고 있다 남편이 한국에 간다는 소식을 들을때는 무착 화가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하노이의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중씨는 일이 끝난후 하노이 야간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
남편 잡씨의 고향은 하노이에서 서쪽으로 30km 떨어진 수원마이현으로 현재 부모님과 형이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페인트공인 아버지의 극성과 잡씨가 한국에서 벌어 보내주는 돈으로 가족들은 새집(4층)을 지어 살고 있다.
‘아내에게 잘 해주기 위해 기술전문학교 1년을 마친후 한국으로 출국했다’며 ‘4년후에 베트남에서 카센터를 개업하기 위해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있다’며 부인 중씨는 눈물을 글썽인다.
어머니 틴(47)씨는 “생활이 어렵지만 아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해서 도움을 줬다”며 “몸이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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