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 때문에' 법정행

올해 169명 회부·35.2%↑… 무전취식·무임승차 많아

2009.06.10 20:02:46

충북에서 올 들어 지난달까지 169명이 즉결심판(즉심)에 회부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25명)에 비해 35.2% 증가했다. 극심한 경기불황을 반영하듯 무전취식과 무임승차가 대부분이다. 법정 참관을 통해 즉심회부자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지난 8일 오후 2시 청주지법 103호 즉심법정. 28명의 즉심회부자가 법정을 가득 메웠다.

술값과 택시비를 내지 않고 달아난 중년남성들, 용돈마련을 위해 전단지 무단배포를 한 20대 등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서로 욕설을 하며 말다툼을 벌인 게 사실인가요?"

즉심 담당 정택수 판사가 묻는다.

"판사님, 저 사람이 먼저 ○○○라고 욕을 했어요." "아줌마가 먼저 '열 받게' 했잖아."

모욕혐의로 즉심에 회부된 남녀가 법정 앞에서도 누르락붉으락하며 으르렁댄다.

지켜보던 판사가 나선다. "서로 욕하며 싸워서 법정에 왔는데 또 싸웁니까? 두분 다 진정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계세요."

이들은 여관비 1만원 때문에 욕설을 하며 승강이를 벌이다 즉심에 회부된 업주와 손님사이다. 호황이었을 때라면 1만원 덜 받거나 더 주고 지나칠 수 있는 일인데도 맞고소를 한 탓에 법정까지 오게 됐다.

"판사님, 제가 택시기사를 해봐서 아는데 그 거리는 택시비가 많이 나올 수 없어요. 술김에 화가 나서 그냥 내렸죠."

택시요금 7천원을 내지 않아 즉심에 회부된 P(54)씨가 판사에게 억울함을 호소한다. 택시기사가 요금을 더 받으려 일부러 '빙빙' 돌았다는 것이다.

판사는 P씨가 이전에도 같은 전력이 있다며 택시요금의 7배가 넘는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

친구와 함께 나이트클럽을 찾은 J(47)씨. 안주 값이 비싸다는 5만9천원을 떼먹고 달아났다. 며칠 뒤 나이트클럽에 술값을 갚았지만 이날 J씨는 과료 3만원을 선고받았다.

불황에 용돈이라도 마련하려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다 적발된 사례도 부지기수다.

앳된 외모의 20대 청년이 호명을 받고 재판장 앞에 섰다. 이 남성은 용돈을 마련하려 주택가에 전단지를 무단배포하다 적발됐다. 판사는 벌금 5만원을 선고했다.

다른 2명도 각각 벌금 5만원과 과료 3만원을 선고받았다.

오후 3시. 26명의 즉심이 끝난 뒤에야 모욕혐의로 피소된 모텔업주와 남성이 판사 앞에 다시 섰다.

"이제 좀 진정이 됐어요?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욕설을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두 분 사과하세요. 그리고 이 자리에서 앙금 푸는겁니다." 판사가 말한다.

사납게 보였던 이들 얼굴엔 어느새 옅은 미소가 번졌다.

"사장님, 제가 화가 나서 욕을 했어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잘한 것은 없지요. 오히려 제가 미안해요."

이들에게 '공소기각'이 선고됐다. 모욕죄는 친고죄에 해당되는데 서로 용서하고 처벌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법정 밖에서 다시한번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하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금방이라도 경기침체의 그늘이 벗겨지는 작은 희망을 봤다.

/ 하성진기자 seongjin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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