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 없는 단속을 하라

2009.06.08 18:24:32

얼마 전 충북경찰이 잔꾀를 부리다 들통 나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 교통법규 준수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정부의 '명(命)'을 받들어 실시한 출근길 교통단속이 불씨였다.

충북지방경찰청은 한 달 간 관공서와 언론사, 기업 등으로 단속 대상을 차례로 넓혀 출근길 안전띠 미착용, 휴대전화 사용 등을 단속하고 있다.

경찰은 1일 충북청과 도내 11개 경찰서 정문에서 단속을 벌여 안전띠 미착용자 6명을 적발했다. 경찰부터 솔선수범을 보인다는 뜻이었다.

2일에는 도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등 20개 관청 정문에서 94명이 적발됐다.

다음날에는 '법원·검찰·언론사 앞을 단속하라'는 본청 지침을 받고 청주지법과 청주지검을 비롯해 충주 등 도내 3개 지원, 5개 군 법원 출장소 정문 앞에서 불시단속을 벌였다.

하지만 말뿐인 '불시단속'이었다.

경찰은 단속 전날 법원·검찰에 단속계획을 알리는 공문을 발송했다. 노파심에 유선으로 '내일 오전 7시∼9시까지 단속이 예정돼있으니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법원은 곧바로 단속일정과 함께 주의를 당부하는 구내방송을 내보냈다. 경찰의 배려와 법원의 재빠른 대처로 정작 법원 직원들은 단 한명도 적발되지 않았다.

안전띠를 매지 않은 채 법원을 찾은 민원인과 주민 등 15명만 적발됐을 뿐이다.

법원·검찰에 단속일정을 사전 통보해줬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은 안팎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권력 앞에 낮은 포복하는 경찰', '가재는 게 편' 등등. 체면 구기는 별의별 수식어도 달렸다. 사전 통보보다 더욱 기 막히는 것은 경찰의 거짓 해명이다.

경찰은 법원·검찰 등에 공문은 보냈지만 유선통보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거짓말은 얼마가지 않아 탄로 났다.

'법원·검찰에 전화를 걸어 단속일정을 알려줬다'는 어느 솔직한 경찰관의 말, '경찰에서 전화를 해줬다'는 법원 직원의 귀띔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경찰은 다시 말을 바꿔 "사실 법원·검찰뿐 아니라 지자체에도 단속일정을 알려줬다"고 털어놨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는다지만 얼마 못가 들통 날 거짓말을 왜 했을까?

뒤늦게 '권력 앞에 고개 숙인 단속'보다 '보여주기식 단속'이란 수식어가 그나마 자존심을 지킨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경찰은 교통법규 준수문화가 확립될 때까지 단속에 나선다고 했다. 경찰을 지켜보는 공직자보다 도민들의 눈이 더 많고 더 무섭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마나'한 단속은 안한 것만 못 하다. 경찰의 성역 없는 단속을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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