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경제 팍팍… "법대로 합시다"

청주지법 민사소액사건 매년 증가

2009.05.26 20:24:19

26일 오전 민사소액사건 재판 등에 출석하려 온 시민들이 청주지법 법정동 앞에서 담배를 피거나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피고! 껌은 좀 뱉읍시다. 밖에 나가서 껌 뱉고 오세요. 피고의 사건은 마지막으로 진행하겠습니다."

26일 오전 11시 청주지법 524호 민사법정.

A금융회사의 대리인과 모자를 살짝 눌러 쓴 40대 남성이 원고·피고석에 나란히 앉았다.

판사의 질문에 피고가 껌을 씹으며 대답한다. 서류를 뒤적이던 판사가 피고에게 껌을 뱉으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들은 척도 안한다.

판사는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더니 끝내 피고를 법정 밖으로 내보낸다.

이날 524호 법정은 2천만원 이하의 빚이나 물건 값을 달라며 서로 다투는 소액사건이 진행됐다. 신용카드대금이나 은행대출금을 갚지 못한 서민들에 대한 재판이 80%를 차지했다.

대부분 피고들이 출석하지 않다보니 판사가 '공시송달' 방법으로 재판을 한 뒤 선고했다.

민사법정이다보니 범죄의 양형을 다루는 형사재판에선 전혀 상상도 못할 풍경이 연출됐다.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쓴 여성, 껌을 씹으며 축 늘어진 자세로 피고석에 앉은 남성들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날 법정에선 구상금, 대여금, 신용카드이용대금, 보증채무금 등 100여건이 넘는 재판이 열렸다.

법정 밖에서 재판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신용카드사로부터 소송을 당한 주부들이 한두 살배기 아이들을 등에 업고 재판목록을 보는가하면 배고프다며 칭얼대는 갓난아이를 의자에 눕혀 우유를 먹이기도 한다.

법원 앞에서 만난 K(33)씨에게 법원에 온 연유를 묻자 조심스레 사정을 털어놨다.

K씨는 경기불황으로 손님이 뚝 끊기면서 가게유지가 어려웠다. 가게 보증금은 그간 밀렸던 임대료 등을 제하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한 달이 지나 신용카드 이용대금명세서를 받았다. 현금이 없어 '카드돌려막기'로 3개월을 버텼다. 결국 연체를 하게 됐고 빚은 어느새 700만원이 돼버렸다. 수차례 독촉에도 변제가 되지 않자 카드사는 K씨를 상대로 법적절차에 들어갔다. K씨는 이날 재산명시 재판에 출석하려 법원을 찾았다.

법정동 앞에선 소송 당사자들끼리 얼굴을 붉히며 말다툼을 벌인다. 심지어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보증금 2천만원에 월 40만원을 주고 구두수선가게를 임대하기로 계약해놓고 인근에 구둣방이 생기자 트집을 잡아 계약을 해지하려는 사람, 돈을 빌린 뒤 차용증이 없다며 시치미를 뚝 떼려는 사람 등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팍팍한 서민경제를 반영하듯 충북지역 소액사건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청주지법에 청구된 민사소액사건은 지난 2007년 8천725건에서 지난해 9천394건으로 669건(7.7%) 증가했다. 올 들어서도 지난달 말까지 2천598건의 사건이 진행됐다.

/ 하성진기자 seongjin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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