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 이 가을

2020.10.18 17:49:55

이 가을
                            정진헌
                            건국대학교 교수




이 가을,
학교 연구실을 벗어나
천태산 자락 고향에 가서
농사라도 짓고 싶다
따스한 가을 햇살에
얼굴이라도 검게 그을리며
아버지처럼 굽은 허리라도 펴며
소주 한잔에
흙의 시름을 달래주고 싶다
따분한 책은 잠시 접어두고
나팔꽃과 한가로움을 말아 엮으며
가을바람의 쓸쓸함을 사랑이고 싶다
허수아비처럼 겸손한 옷이라도 입고
풀밭에 누워
고추잠자리와 낮잠을 청하며
붉게 익은 대추의 단꿈을 꾸고 싶다
비록 매달 받는 월급이 아닌
기다림에 쫓기는 가난한 삶이지만
한 해의 가치를 평가 받는
농부의 삶처럼,
그렇게 내가 태어나 자라온 고향에서
석양을 가슴에 안고
하루를 접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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