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비를 취하려한 변사또는 유죄인가

2020.07.16 15:51:04

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교수

조선이 양반의 나라라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지만, 노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그나마 '추노'라는 드라마가 2010년에 방영되면서 조금은 인식이 된 듯 한데, 최근 들어 갑자기 이순신이 관노와 동침을 했느냐 안했느냐며 인터넷과 정치권에서 설전이 오가면서 다시 한 번 관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 사회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을 이해해야하므로 관노에 대해 알아보고자한다.

조선은 종천법(從賤法)이라 하여 부모 어느 한쪽이 노비면 그 자식은 모두 노비가 영구히 세습되도록 하였다. 이렇게 부모 신분이 낮은 쪽을 따르는 나라는 가장 가혹한 세습 신분제의 국가는 중세 이후 인도와 조선 뿐이라는 어느 역사학자의 주장이 설득력 있는 부분이다. 중세를 배경으로 중국이나 일본의 영화를 보면 조선과는 사뭇 다른 이유가 이런 차이에서 온다. 전쟁포로나 이민족을 노예로 유입하지만 노예가 경제에서 필수적 기능을 맡지 않은 '노예소유 사회'와 달리, 노예가 없으면 경제가 유지되지 않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남부와 조선이 '진정한 노예사회'라고도 한다. 특히 악명 높은 미국 남부 흑인 노예는 민간 부분에 국한되었지만, 조선은 국가의 전 영역을 국가의 노예, 즉 관노(官奴)에 의존하였다. 특히 여자 노비의 삶을 살펴보면 얼마나 무서웠는지 이해하기 쉽다. 조선시대 각 고을에는 관비(官婢) 가운데 기생(妓生)의 일을 맡은 관기(官妓)가 있었다. 관기는 관아의 잔치에 나가 노래하고 춤추고, 고을의 관리나 손님의 침실에 들어 성 접대를 해야 했다. 여자 관노인 관비는 당연히 영구 세습이니, 관기의 딸은 관기다. 일제강점기에 성노예로 갖은 고초를 겪은 위안부에게 딸이 생기면 다시 제국의 성노예로서 삶이 세습된다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끔찍한가! 고려시대에도 기생이 있었지만, 신분이 세습되지는 않았다. 조선 초 북방을 지키는 군사를 위로하고자 관기를 배치하도록 하여, 각 고을에 30~60명의 관기인 기생이 배치되었다. 양반들을 위로하는 것도 모자라 평민인 군인들도 위로해야 하는 기생은 국법으로 정원이 증가되었고, 유지되었으면 세습되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외거노비만을 거론하면 중세 유럽의 농노와 조선의 노비가 비슷하다고 주장을 하지만, 조선은 노비가 주인의 비리를 고발하면 교수형에 처하는 법으로 옭아맨 것은 빼고 이야기하거나, 관기의 삶은 애써 숨기려고 하는 것은 옳은 학문의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도덕관념으로는 부끄러운 역사라고 하여도 바르게 탐구하고 밝혀서 미래를 위한 디딤돌로 삼아야하는 것이 역사를 탐구하는 이유일 것이다.

필자의 본업인 의업(醫業)으로 돌아와 보면, 미국이나 독일, 영국에서는 19세기의 자국의 의료사기의 역사를 아주 치밀하게 연구하고 출판하고 있다. 영미권 나라의 의학발전의 역사는 사이비의학과의 투쟁의 역사라고도 불린다. 선배의사들이지만 근거가 불명확한 전통의학이나 중의학으로 환자들에게 영리행위를 추구한 것을 통렬히 비판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2013년 LA에서 의사 크리스틴 대니얼(58)은 본인의 병원에서 "내가 약초로 만든 약을 복용하면 암, 당뇨병, 파킨슨병 등 각종 불치병을 60~80% 완치할 수 있다"며 암환자들에게 한약을 처방하다 의료사기 등의 죄로 징역 14년형과 130만 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의사라고 팔이 안으로 굽기만 한다면 의사란 직역은 누구에게도 존중받을 수 없다. 한국의 의사들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러한 사회적 책무에 소홀한 것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의사만 그런가 조금 항변하고 싶다. 의사, 교수나 공직자 등 현재 기득권이 된 우리가 관기를 취하던 조선 양반과 무엇이 다른가? 요즘 세습이 아니고는 입성할 수 없는 강남이나 부모찬스 아니면 가기 어려운 명문대, 불공정한 공기업 채용사례들을 보고 있자니, 가혹한 신분제의 헬조선을 목숨 걸고 탈출하려던 추노 속 젊은 노비들이 떠오른다. 우리 세대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닐까? 아, 그리고 조선의 국법에 따라 변사또는 무죄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세대도 법적으로 무죄이기는 하다.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