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인 음성현 면적을 상소하다, 현감 김육

2015.02.05 15:27:18

조혁연 대기자

음성군은 지금은 인구 10만명에 2읍 7면의 비교적 큰 군세(郡勢)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1906년 전까지는 달랐다. 지금의 음성읍과 원남면을 제외한 금왕읍, 감곡면, 생극면, 삼성면, 대소면, 맹동면 등 군 북부와 서부지역은 충주목에 속했다.

소이면도 1914년 전까지는 충주목 소파면(蘇坡面)과 사이포면(沙伊浦面)에 속하던 지역으로, 지금의 면이름은 두 곳에서 한 글자씩을 조합했다. 《세종실록》 지리지를 보면 쇄잔했던 음성군의 모습을 보다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충주 병제천(幷梯川)에 이르기 7리, 서쪽으로 충주 건천(乾川)에 이르기 17리, 남쪽으로 청안(淸安)에 이르기 26리, 북쪽으로 충주 석적산(石積山)에 이르기 19리이다. 호수가 1백 71호요, 인구가 7백 26명이다.'

현의 중심지인 읍치(邑治)에서 가까운 곳은 7리, 멀어야 26리 정도면 이웃 고을의 경계에 도달하고 있다. 고을의 인구도 8백명을 넘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 현의 지위를 지녔던 괴산군 청안은 지금은 면의 위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과거 한 때는 다른 모습이었다. 오히려 이웃 음성현을 흡수, 대읍의 위세를 지닌 적도 있었다.

'전에 과천(果川)을 금천현(衿川縣)에 부속시켰었고 음성(陰城)도 청안(淸安)에 부속시켜 합병시킨 선례가 이미 있으니, 지금 연풍을 어느 읍에 합병시키는 것이 타당하다.'-<선조실록 33년 2월 13일자>

조선 선조 조정은 우리고장 연풍현이 임진왜란 때 너무 피해를 입자 이웃 고을과의 통폐합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음성현도 도매금으로 논의됐다.

음성현의 행정면적이 비정상적으로 작다는 의견은 이미 조선 중기부터 제기됐다. 다음은 당시 음성현감 김육(金堉·1580~1658)의 소차(疏箚)이다. 소차는 상소와 거의 같은 뜻이다.

'본현(음성현)은 잔약하기가 호서 고을 가운데서 가장 심한데, 한갓 호서 고을 가운데서만 가장 심할 뿐만 아니라 팔도 가운데 이곳보다 더 잔약한 고을은 없을 것입니다. (…) 본현은 단지 2면만 있습니다. 그 안에 민호(民戶)가 비록 즐비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역시 얼마나 되겠습니까.'-<잠고유고 제 4권>

조선시대 충주목과 음성현(좌측 아래 노란색) 모습.

김육은 이어지는 소차에서는 반대로 충주목의 비정상적인 비대함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본현은 충주(忠州)와 경계가 접하여 있는데, 충주는 40여 면(面)이나 되고 본현은 2면밖에 안 됩니다. 주(州) 하나는 어쩜 이리도 크고 현 하나는 어쩜 이리도 작습니까. 충주의 땅이 서쪽으로 쭉 뻗어 나와서 본현과 음죽(陰竹)의 경계 지점을 뚫고 지나간 것이 있는데, 그 너비가 불과 5리도 되지 않아 모양이 마치 호리병의 허리나 비파의 목과 같이 생겼는바, 지명이 석우(石隅)입니다.'-<〃>

그는 음성현의 모습을 머리 속에 입력해놓고 있었는지 '여기서부터 서남쪽으로 쭉 뻗어 내려가면 땅이 점차 넓어져서 서쪽으로는 죽산(竹山)의 경계에 닿고 남쪽으로는 진천(鎭川)의 경계와 연하였는데, 본현을 빙 돌아서 감싸고 있어서 마치 품속에 품고 있는 듯합니다. 그 모양새를 비유하자면 마치 혹이 달린 듯한 모습입니다.'라고 상소했다. 석우는 지금의 금왕읍 금석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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