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자로 이뤄진 흉언', 청주목 또 강등

2014.12.25 15:31:01

조혁연대기자

1804년(순조 4) 청주목이 다시 서원현으로 강등되고 충청도는 광역행정 지역은 공충도바뀌있다. 청주목에 거주하는 한해옥(韓海玉)이라는 사람이 대역죄에 해당하는 흉언(凶言)을 지어냈기 때문이었다.

'이조에서 청주목을 서원현으로 강등시키고 충청도를 공충도로 바꿀 것을 아뢰었으니, 죄인 한해옥이 거주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순조실록 4년 10월 27일자·사진>

조선시대 청주에서 일어났던 여러 역모사건과 달리 한해옥 건은 그 전모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16자로 이뤄진 흉언'이라는 것만 『순조실록』을 통해 확인된다.

순조실록 4년 10월 27일자.

"본래 효경의 뱃속에 항상 귀역의 마음을 품고 있던 차에 이번 여름 역적 권유·정재민 무리들의 국옥(鞫獄)이 있고 난 연후에 몰래 원망하는 마음을 쌓아오다가 감히 제멋대로 후매하는 계획을 짜서 소회를 읊은 16자의 흉언을 지어냈으니, 견준 것은 망측하였고 그 뜻은 음흉·사특하였습니다.'-<순조실록 4년 10월 24일자>

인용문 중 '효경'의 '효'는 어미를 잡아 먹는 올빼미, '경'은 아비를 잡아 먹는 파경이라는 짐승을 말한다. 즉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됐다. '귀역'은 귀신과 수상곤충의 일종인 물여우를 일컫는 표현으로 음흉한 사람을 일컫고 있다.

정리하면 △권유 무리의 사건이후 그 소회를 16자 흉언으로 적었고 △그 내용이 흉악·패려한 것이 되나 역시 이해가 잘 안 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한해옥은 아버지 한유(韓鍮) 때문에 영조 조정에 사무치는 원망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 한유는 당시 권신인 홍봉한(洪鳳漢·1713-1778)을 처벌해 달라고 궐문 앞에서 도끼를 등에 메고 하는 지부상소를 했다가 도리어 영조의 노여움을 사 흑산도로 유배됐다.

'유생의 이름을 유적(儒籍)에서 삭제하고 흑산도로 정배하되 사흘 길을 하루에 걸어 압송하고, 그 상소는 불태우라 명하였다.'-<영조실록 46년 3월 22일자>

청주사족 한유는 흑산도 유배가 너무 억울했는지 그곳에서 팔뚝에 나라를 걱정하는 문자를 낙인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임금이 한유가 팔뚝에 글자를 새겼다는 말을 듣고 금군(禁軍)을 보내어 확인하라고 명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금군이 돌아와 아뢰기를, "과연 숟가락 끝을 불에 달구어 살갗을 지져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나라를 바로잡는다.[死君匡國]'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였다.-<영조실록 46년 4월 2일자>

그러나 한유의 주장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당시 사관은 이렇게 적었다.

'말은 대부분이 절실하고 곧았으나, (…) 그런데 팔뚝을 지져 글자를 새김은 얼마나 고통이며, 도끼를 들고 죽음을 맹세함은 무슨 용기인가. 심지어는 동요를 끌어대어 임금의 마음을 움직여 반드시 홍봉한을 죽이고야 그만두려 하였으니, 또한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영조실록 46년 3월 23일자>

홍봉한 영조 때의 신하로 혜경궁홍씨의 아버지가 된다. 곧 정조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한해옥은 아버지의 이같은 여한 때문에 당시 영조의 조정에 대해 커다란 원한을 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충청도와 청주목은 8년이 지난 1812년(순조 12)에 복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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