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홍'과 '봉황지', 그리고 이름없는 청주기녀

2014.12.11 14:32:37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사진)에는 일지홍(一枝紅), 봉황지(鳳凰池), 이름없는 기녀 등 청주의 기생도 다수 등장한다. 수양대군 세조가 쿠데타(계유정난)를 일으킬 때 오른팔과 왼팔 역할을 한 인물이 한명회와 권람이다.

한명회는 당시 청주목 땅(지금의 천안시 수신면), 권람은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잠들어 있는 등 우리고장과 인연이 깊은 인물들이다.

이들이 수양대군을 만나기 전 청주를 찾았고, 이때 권람은 일지홍이라는 기녀를 좋아하게 됐다. 그러나 몇년 뒤 권람이 다시 청주를 찾았을 때 일지홍은 저승으로 간 뒤였다. 권람은 마음 한 구석의 허전함을 이렇게 읊었다.

'지난 무오년에 놀던 일 생각하면(憶昔來遊戊午年) / 일지홍의 요염한 자태 선비의 간장 녹였지(一枝紅艶惱儒仙). / 오늘 다시 찾아오니 감개가 무량하나(今日重遊還有感) / 가련하다 외로운 무덤 인간을 등졌구료(可憐孤塚隔寒烟).'-<조선해어화사 제 26장>

권람은 그후 동시대 문신 강중(剛中·김수온의 자)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기회가 있었고, 이때 청주기생 일지홍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김수온은 "나도 청주 율봉역의 봉황지라는 기녀를 좋아했는데 몇년 뒤 다시 찾으니 이승에 없었다"라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김수온은 그때 율봉역 난간에 기대에 이런 한시를 읊었다고 덧붙였다.

'밭두둑에 보리는 싹트고 매화는 시들어(농麥初胎已仁) / 강남에서 온 나그네 마음 절로 상하네(江南行客動傷神) / 작은 연못은 예나 다름없고 연꽃은 청조하건만(小塘依舊荷花淨) / 그때 술 권하던 사람 볼 수 없네(不見當時勸酒人).'-<〃>

그러자 권람이 이렇게 응답한 것으로 『조선해어화사』는 적었다.

"서원(청주)은 본래 미인 많은 곳이다. (…) 옛사람이 말한 '깃발 앞세우고 지나가건만 누각 위에는 이 행차 바라보는 사람 없네'라는 시구는 나와 그대를 두고 한 말일 것일세라며 손뼉을 치고 크게 웃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보듯 조선전기 청주 율봉역에 작은 연못이 존재했다. 이는 조선후기의 '율봉도찰방해유문서'(栗峯道察訪解由文書·1660년)'라는 고문서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서거정이 지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 수록돼 있던 것을 한학에 능통한 이능화가 『조선해어화사』로 옮겨 적은 것다. 이밖에 『조선해어화사』에는 송인(宋寅·1517-1584)과 사귀었던 이름없는 청주의 기녀가 등장한다.

중종-선조 연간의 송인은 '이별의 이 마당에 띠 풀어 옷을 남겨주리니 / 가는 허리 묶어서 한 줌으로 만들라. / 몸맵시 더욱 날씬하게 만들어서 / 휘장 안에 이끌어 놓고 이불을 덮어주라.'(〃)라는 시를 건네며 이름없는 청주기녀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여사당패는 기녀는 아니지만 유녀(遊女) 인식이 강했다. 이 때문인지 이능화는 구한말 유행했던 '여사당 자탄가'(女社堂 自歎歌)를 『조선해어화사』에 수록했다.

'한산 세모시로 잔주름 곱게곱게 잡아 입고 / 안성 청룡사로 사당질 가세. / 이내 손은 문고리인가 / 이놈도 잡고 저놈도 잡네. / 이내 입은 술잔인가 / 이놈도 빨고 저놈도 빠네. / 이내 배는 나룻배인가 / 이놈도 타고 저놈도 타네.-<조선해어화사 제 35장>

진천 백곡면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바로 청룡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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