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TV 관람기

2011.07.07 19:27:45

윤기윤

오후 7시, 서둘러 TV를 켰다. 아직 더반에서의 생중계는 시작 전이었다. 5분이 지나자, 한국의 나승연 대변인이 무대에 등장했다. 무대는 유려하고, 정갈했다. 푸른 기운과 검은 색채가 어울려져 세련미를 더했다.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의 마지막 관문인 '평창 PT(프레젠테이션)'가 시작된 것이다. 유창한 영어솜씨, 차분한 말투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미소는 비갠 하늘처럼 상쾌함을 주었다. 믿음이 갔다. 한국 PT의 핵심은 4명이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연아, 입양아 토비돈슨과 나승연 대변인이다.

나대변인은 "좌절할 때 마다 털고 일어서서 귀를 기울였다."며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었으며 평창은 실망하지 않고 끈기와 인내를 갖고 도전했다. 평창의 슬로건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은 끈기와 인내를 통해 일궈낸 희망"이라고 서두를 열었다. 간간히 TV화면에 비치는 객석 IOC 위원들은 평창의 화면 앞으로 몸을 끌어당겼다. 연단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약속한다. 한국정부가 무조건적인 지원을 할 것이다."라며 강력한 정부의 뒷받침을 만천하에 천명했다. 관객은 조금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말이 무겁고 장엄한 오케스트라라면, 김연아의 말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처럼 밝고 환했다. 김연아는 "여전히 떨린다."며 꾸미지 않는 진솔함으로 관객에게 다가서더니 "여러분은 지금 역사적인 결정을 하게 된다."라며 올림픽 정신과 평창의 당위성을 적절히 섞어 IOC위원들을 설득해 가기 시작했다. 표정은 우아했으며, 특유의 당찬 모습도 간간히 보였다. "저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지평'이 남기게 된 살아있는 유산"이라며 올림픽의 꿈과 희망을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피겨스케이트를 신고 아름다운 몸짓으로 평창의 화면으로 뛰어 들어 위원들을 안내했다. 객석의 위원들은 마치 김연아의 손을 잡고 직접 평창의 현장을 속속들이 소개받는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한국의 축적된 IT 힘이 마음껏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화려한 그래픽만 자랑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무한한 진정성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입양아이면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토비도슨의 무대는 또 다른 울림이 있었다. 그는 "나는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다. 내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지금처럼 올림픽 선수로 출전해서 동메달을 딸 수 없었을 것"이라며 "당시의 한국은 여건이 되지 않았다. 이제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많은 수백만명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줄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IOC 위원들에게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던지며 과거로의 회귀, 전통을 강조한 뮌헨의 슬로건을 무너뜨려갔다. 백인들의 전유물이 아닌,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누리는 올림픽 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던 것이다.

마지막은 드림프로젝트로 IOC 위원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두 번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평창은 아프리카, 아시아 등 동계올림픽으로부터 소외된 지역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드림 프로젝트'를 꾸준히 실현해 왔다는 것을 보여줬다. 각국의 아이들이 한국의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아이스링크로 향하며 해맑은 표정으로 희망을 이야기했다. "올림픽은 희망입니다." "미래입니다." "평창올림픽은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외친다. 아이들은 객석위원의 귀속에 소곤거리듯 말하는 것 같았다. 올림픽 유치에는 2번이나 실패한 나라지만, 2004년부터 시작된 드림프로젝트의 약속은 묵묵히 지켜냈다. 그 결과 드림프로젝트로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3명이나 되었다. 그 마음이 IOC 위원들의 마음으로 흘러들었다. 이성과 감성을 모두 건드린 PT은 성공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승연 대변인은 말했다.

"평창은 원대한 꿈이 있다. 실패를 통해 준비가 된 도시다. 어린 선수들에게 꿈과 기회를 주는 '새로운 지평'을 이제 아시아의 작은 마을 평창에서 시작해야 한다."

뮌헨의 카트리나 비트는 "전통은 혁신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지만, '새로운 지평'에서 뿜어내는 희망의 기운 앞에 빛을 잃고 말았다. '장강의 앞물결도 뒷물결에 밀려난다.'라고 하지 않던가. 김연아의 생기발랄한 청순함, 나이답지 않은 깊고 우아한 기품 앞에 전설의 피겨여제 카타리나 비트는 빛을 잃고 말았다. 김연아는 마치 웅비하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듯 했고, 카타리나 비트는 쇠락해가는 유럽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아프리카 전통복장을 한 소년과 소녀가 단상을 향해 걸어가던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가. 10년을 준비하고 기다려왔던 그 기간처럼. 쟁반 위에 담긴 카드를 가져오는 발걸음마다 온 국민이 숨죽이며 주목했다. 12시18분 IOC 총회에서 마침내 자크 로게 위원장이 카드를 뒤집으며 발표를 했다.

"펴~엉창"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달려온 세월이 무거웠다. TV화면에 이대통령이 김연아의 등을 두드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연아도 울었고, TV앞에 숨죽이며 관람하던 모든 국민들도 울었다. 이제 되었다. 평창 만세, 대한민국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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