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맛을 아는가

2009.10.27 17:44:10

어린 시절 친척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쌀뜨물 색깔을 띤 탁한 물을 보고 "이게 뭐죠·"하고 물었더니 "먹어 보렴"이라는 답변에 우연히 맛을 보게 됐다.

특이하고 달콤한 맛에 '한번만 더, 한번만 더 맛을 보자'고 하다가 그대로 곯아 떨어지고 말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이것이 우리나라의 전통 술인 '막걸리'라는 것이었다.

술을 전혀 마셔본 적이 없던 어린아이로서 당시의 사건은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돼버렸지만 '달착지근하면서 은은했던' 맛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60~70년대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 마시던 막걸리의 열풍이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어제 TV 뉴스에서는 백화점에서의 막걸리 매출이 맥주의 그것을 뛰어넘었다는 기사까지 보도되기도 해 막걸리의 위력과 인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렇게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농민들의 대변자인 농협에서 만든 농협청주농산물물류센터에서 양주를 판매하는 것을 놓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농협청주농산물물류센터 관계자 등 찬성을 하는 입장에서는 "양주를 사려는 고객들이 농협물류센터에서 양주를 구입하지 못하면 다른 대형할인매장에 다시 가야 하게 되고 결국 농협청주농산물물류센터에 오지 않게 될 것"이라며 고객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또 "농산물의 경우에는 농민의 입장을 고려해 수입농산물을 판매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양주는 가공식품으로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반대를 하는 시민이나 농민단체들의 입장은 "농민을 위한 농민이라고 하면서 우리 농업으로 생산된 원료로 만든 막걸리나 동동주 등 민속주를 판매하는 것이 당연하지 외국에서 수입해다까지 판매를 하는 것은 외화 유출뿐 아니라 농촌경제 활성화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시민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술보다 외국의 술을 더 중요시하는 것은 질이나 취향 보다는 가격이 비싸 이윤이 많이 남기 때문이 아니냐"며 "농민들의 정서를 무시하고 이윤추구에만 신경쓰는 것은 농협물류센터가 해서는 안될 방향"이라고 말했다.

각자의 주장에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적정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농협청주농산물물류센터는 물론 전국의 모든 물류센터와 하나로마트에서 판매되는 모든 물품을 구매하는 농협하나로마트 분사에서 외제양주 매입을 총체적으로 추진하고 이를 각 물류센터 등에 분배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것이 진정 농민을 위한 사업인지 묻고 싶다.

어릴 적 우연히 마셨던 막걸리 맛이 가장 한국적인 맛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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