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 자원봉사자와 단양 마늘의 힘

2024.08.25 14:49:22

홍석완

단양군 농업축산과

뜨거운 뙤약볕 아래 시골 노부부는 마늘을 캐다 굽은 허리를 일으킨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마늘대를 묶으며 굵은 땀방울을 훔쳐내고 있다. 오늘은 너른 마늘밭에 서울에서 온 손님들이 가득하다. 녹색 물결이다.

4∼5년 전부터 매년 마늘캐는 일을 도와주고 있는 서울 강북구 새마을(부녀)회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뜨거운 햇볕 아래 마늘 캐느라 모두 구슬땀을 흘리고 있지만 그중 눈에 띄는 한 분이 있다.

저쪽 한켠에서 말도 없이 구부리고 일만 열심히 하시는 분! 85세 정하섭 어르신이다. 그 연세에 본인 몸도 돌보기 어려울 텐데 새벽 먼 길을 나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다니…

사연도 들을 겸 어르신 옆 한 이랑을 맡아 속도를 맞춰 일하면서 얘길 나눠봤다.

어르신은 충남 광천에서 농사짓다가 6·25 전쟁 후 상경해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장사하다가 이젠 은퇴하고 시간이 많으니까 운동삼아 온다고 하신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다행히 내가 아픈 곳이 없어, 이렇게 도움도 줄 수 있으니 마음이 뿌듯하다. 일을 마치고 갈 때는 늘 맘이 홀가분하고 시원하더라. 봉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에 부자가 된 기분이더라. 어느 해인가 마늘에 진흙이 많이 붙어 있어 털어내느라 엄청 힘들었는데 올핸 이렇게 잘 털어지니 일하기도 편하다. 좋아하는 막걸리도 일을 마치고 마셔야 하겠다. 농삿일이 이렇게 힘든 일인데 농업인들의 어려움을 알고도 남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웃 사람들도 어르신 칭찬에 입을 모은다. "할아버지는 자수성가의 모델이다. 젊었을 때는 인수동 새마을지도자도 역임하셨고 늘 부지런하여 마을 일이나 봉사활동이 있으면 제일 먼저 나서는 분이다. 젊은이보다 더 열심히 일하신다"고 엄지척을 한다.

정하섭 어르신의 육체적 건강은 어쩌면 이처럼 밝고 건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원봉사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필자가 부끄럽기만 하다.

우리 단양군은 해마다 6월 중순이면 마늘 캐는 일에 온 군민이 나선다. 조금 일찍 캐면 마늘이 덜 여물고 조금 늦게 캐면 마늘 줄기가 말라서 상품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장마철이 임박해 때를 놓치면 낭패를 보게 된다. 불과 10여일 사이에 다 캐야 한다.

그래서 휴일이면 집집마다 외지에 사는 자식, 친척까지 불러들인다. 자원봉사자는 물론 공무원을 비롯한 각급 기관·단체, 회사원, 군장병, 군민 모두가 총출동하다시피 한다.

그래도 일손이 모자라 이렇게 도시지역의 봉사단체와 협력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특히 서울특별시 새마을회에서 매년 찾아와 도와주시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단양 지역은 한지형 재래종 마늘의 원산지다. 황토흙과 석회암 지대라는 특성으로 마늘이 단단하고 저장성이 좋다.

알싸한 맛과 향이 뛰어나 최고급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마늘 약선, 마늘빵, 마늘 순대, 마늘 통닭 등 마늘로 요리한 음식이 유명하다.

그러나 단양 지역의 마늘 생산량은 전국의 1%에 불과하다. 경지면적이 적어 명품이지만 양이 적으니, 값도 다소 높을 수밖에 없다.

최근 단양 지역의 마늘이 아닌 국내산 마늘로 만든 제품에 단양산 마늘로 오해할 수 있는 표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 판결도 있었다.

우리 군은 종자, 재배, 수확, 마케팅, 저장 등 일련의 과정에서 단양 마늘의 특성을 강화하기 위해 과감한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마늘 농사의 특성상 기계화에 한계가 있으므로 일손 걱정이 태산이다. 서울 새마을(부녀)회에서 일손 봉사에 이어 향후 직거래까지 상생 모형을 체계적으로 잘 만들어 도농 교류 협력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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